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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ary thought/As coin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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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 상처는 아무리 잘 아물어도 흉터가 남는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어떻게든 해결되고 잠잠해져도 이 모든 무례, 이 모든 무모함, 이 모든 이기심. 그것들은 집단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망각에 기대는 자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나에 대하여 1. 내 취향은 고급스럽지 않으며 잡식성이다. 카메라, 책, 그림, 피규어, 프라모델, 각종 소품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고 수집하나 그중에 하이엔드급의 것은 없다. 일관성도 없고 그냥 좋아하는 것을 모을 뿐이다. 2. 나는 지식 수준이 높지 않다. 그저 누가 보기에 무식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을 정도로 살아가려고 노력할 뿐이다. 어느 한 분야에 정통해 어디에서든 자랑스러울만한 지식을 갖춘 적은 한번도 없다. 단지 닥쳐오는 일은 어떻게든 해나갈만한 대응력은 어느정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3. 나는 정치의식이 대단히 높거나 지극히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저 일반인 수준에서 생각하는 정의외 상식을 좋아하며 조금만 파고들어도 한계나 모순이 드러날만한 얄팍한 도덕성과 정의감을 갖고 있을 뿐이다. 4. 나는 돈이..
Fine quality of life : 파이어족과 욜로족 당신은 오직 한번 살뿐이다의 축약어인 욜로는 재산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며 살자는 개념으로 몇년전부터 젊은층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그에 반해 20대때 부터 여행이나 물건 구매 등의 낭비를 자제하고 부의 축적을 위해 노력해 빠른 시간안에 경제적 제약에서 벗어나 은퇴를 하고 자기 삶을 살고자하는 사람들을 파이어족이라고 부른다고 하며 요즘 젊은이들에게 파고 들고 있는 경제 관념이라고 한다. 둘 중에 무엇이 맞고 어떻게 살아가야한다는것을 규정하기는 힘들다. 이것도 시대의 흐름에 불과한 것이기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말로 퉁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의 학교를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3년간의 시간 동안 자신의 생활을 희생해 공부에 집중하고 좋은대학, 비전있는 학과에 진학해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겠다는 생..
인과율의 함정 모든 것에서 원인과 결과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때로는 아무 이유없이 벌어지는 일도 존재함을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삶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Useless but meaningful 아직까지도 어떤 영역에서 일가를 이루지 못한채 꿈만 꾸고 있는 듯한 내가, 여전히 글이나 끄적이며, 낙서나 즐기며, 사진에나 목숨걸고 있는 내가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 맘에 드는 그림 한장, 맘에 드는 사진 한컷, 맘에 드는 글 한줄이면 만족감이 공갈빵처럼 부풀어올라 어쩔 줄을 모르는 철없는 나는 대출도 모르고, 주식도 모르고, 부동산도 모르는 경제적 미성년에 불과해 그렇게 우스워보이나 보다. 일년 내내 책 한권도 사지 않고, 무슨 차를 타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에만 집중하는, 한줄의 글도 읽고 쓰지 않는 사람들과 무슨 얘기를 나누겠는가 하는 자기 위안을 하며 나를 지켜나가고 있지만 사실 나도 알고있다. 내가 얼마나 모자란 삶을 살고 있는지. 그래도 나는 이런 삶이 만족스러우니 그대들이 나를 바꾸려 노력..
스러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움 해지기 전의 역광이 만들어내는 마지막 반짝임. 이 시간이 지나면 완전한 어둠 속에 묻혀 형태를 인식할 수 없게 된다. 뭐든 절정에 달하면 스러져갈 것을 생각해야 하는 법. 그러나 희미해져갈 형태에 대한 아쉬움을 생각하며 슬퍼하기엔 너무 아름답기만한 순간. 최고의 순간과 마지막이 겹치는 세상사의 역설을 어찌 감당해야할까
이미지 너머의 이미지 장르 소설이나 만화를 보면 세계의 원형을 탐구하는데 집착하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데아를 모방했다는 세계의 불완전한 모습이 아니라 이데아 그 자체, 세계의 본질에 접촉하려는 사람들. 어린 시절에 그런 내용들을 접했을 때는 뭐 저리 쓸데없는 것 가지고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할까 싶었는데 이 나이 들어 십여년이 넘게 별것 아닌 이미지 탐구에 집중하다보니 그게 그렇게 하찮게 치부할 일은 아니었구나 싶기도 하다. 이제는 구시대적 발상이 되어버렸지만 예술, 혹은 그 하위 분류로써의 사진을 하는 사람들 중 여전히 이미지 너머의 이미지, 이데아의 원형을 추구하는 이들이 있다. 철저하게 파편화되어버린 이 시대에 자기 자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모든 것을 개별화시켜버리는 작업들도 결국은 본인 스스로를 포함하고 있는..
시뮬라크르 복제를 하면 할수록 원형에서 더 멀어져버렸지만 그래서 새로운 역동성과 정체성을 가지게 되버린 존재들이 넘쳐나는 때. 이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야할지 이 시대의 주역들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를 기존의 잣대에 근거해 판단하는 것은 아무 의미없는짓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밖에 없다면 최대한 긴호흡으로 지켜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