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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 풍경 속에서 번뇌하며 모든 것이 저물어가던 무렵 바람 냄새가 나서 집앞 바다를 거닐었다. 감정을 품지 않은 풍경 속에 서서 108개도 넘는 번뇌를 감당해야 하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돌아오던 길, 아파트 1층의 고양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2025. 5. 4.
나의 진주 - 항상 오랜만 오랜만에 진주.익숙한 듯 낯선 거리, 여전히 그대로인 공기.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서로의 안부를 묻기보다, 그 사이 흐른 시간을 조심스레 만져본다.오랜만에 들린 가게들.익숙한 향기. 변치 않은 메뉴와 자리. 그곳은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나는 그곳을 기억하고 있었다.오랜만에 먹은 음식들.입에 익숙한데, 혀끝이 낯설다. 기억 속 맛과 지금의 맛 사이, 시간은 묵묵히 간을 맞춘다.언제부턴가 모든 것의 앞에 붙는 오랜만.그건 어쩌면, 내가 놓쳐버린 삶의 거리.혹은 마음이 놓아버린 익숙함의 흔적.그 모든 오랜만들이 모여 또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2025. 5. 3.
바로 지금! 자율학습 감독 중,숙면을 취하고 있던 학생의 등짝에서 마주친 문구 하나."바로 지금이야!"매일 눈을 희번덕이며 찾아다니는,어찌보면 뻔하디 뻔한 역설적 순간.처음엔 웃음이 났다.하지만 곱씹을수록,뭔가 마음을 두드린다.그들의 인생에도,우리의 민주주의에도.우주의 기운이 모이는 순간을 기다릴 수만은 없다.진인사대천명!결정적 순간은 늘, 지금이다. 2025. 5. 2.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야하는 당신에게 스스로를 드러낼 힘조차 없는 빛.어둠은 짙고 깊다.무질서.무엇을 먼저 덜어내야 할지 모를…손끝이 닿지 않는 혼란.그런데 당신은보인다고 했다.걸어갈 길이,치워야 할 것들이.그렇다면나는 당신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누구도 걷지 않은 길.당신의 발걸음이 처음으로 닿을 길.나는당신을응원할 수밖에 없다. 2025. 5.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햐..... 진짜..... 이젠 눈치도 보지 않는 적폐들. 진짜 좌절감이 밀려온다. 절대 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명제만이 온전한 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묵묵히 빛을 향해 나아가야한다. 2025. 5. 1.
오늘의 길냥이 - 고양이 에티켓 작년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안장 위에 플라스틱 물병이나 헬멧 같은 걸 얹어두는 모습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조용한 선언이었다. "여긴 고양이 금지구역입니다." 아침마다 출근길에 지하주차장을 지나며 오토바이 위에 앉아 식빵을 굽고 있는 길고양이를 보는 게 나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서 그나마 푹신하고 따듯한 안장 위에 웅크리고 있는 그 녀석들을 보면 묘하게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다. 고요하고 냉랭한 공간 속에선 그 작은 온기가 더 크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토바이 주인들에게는 그 풍경이 달갑지 않았던 모양이다. 흠집과 고양이 털, 그리고 어쩌면 불청객이란 .. 2025. 4. 30.
주말 - 어묵국수, 감탄주, 셰프장, 생마차, 주말 자율학습 감독, 냉삼, CCD커피 두꺼비 오뎅에 갈까 고민하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와이프가 정성껏 끓여준 어묵국수 한 그릇. 국수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걸 보니 괜히 밖으로 나가려 했나 싶다. 마침 한 커뮤니티에서 맛있다고 추천받은 국산술, 감탄주도 꺼내들었다. 맑은 술과 어묵 조합은 웬만하면 실패하지 않기에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한 모금 삼키자마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감탄주는 지나치게 달콤해서 어묵국수의 깊고 담백한 맛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감귤의 향도 어딘지 부자연스러웠고, 결국 감탄이 아니라 한탄을 삼키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통영에서 제일 맛있는 후토마끼를 먹겠다고 결심한 지 일주일. 드디어 마음도 발걸음도 가볍게 셰프장을 향해 걷던 길, 통영 유흥의 탑을 만났다. 번쩍이는 전광판 아래 ‘어린이 보호구역’.. 2025. 4. 28.
공기감 - Atmosphere 우리는 가끔 불가능한 일을 경험한다. 사진 한 장을 보다가, 오래된 노래를 듣다가, 잊고 있던 책의 문장을 읽다가, 문득 특정 시공간의 공기를 느낄 때가 있다. 냄새, 온도, 그때의 빛깔, 심지어 그 순간의 침묵까지. 정확히 표현해낼 수 없는 것은 확실한데, 분명히 존재했던 어떤 느낌이 우리를 덮친다. 혹자들은 이 현상을 공기감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환기와는 다르다. 기억의 창고에서 한 줌의 먼지를 털어내는 수준이 아니라 완벽한 몰입이다. 나는 다시 그 시간에 서있다. 내 눈앞에는 그때의 하늘이 펼쳐지고, 내 귀에는 그날의 바람 소리가 깃든다. 공기감은 그렇게 살아숨쉬는 과거를 현재로 끌어온다. 하지만 이 공기감을 다뤄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진 한 장에, 짧은 문장에, 한 마.. 2025. 4. 27.
창원 상남동 슌사이쿠보 히츠마부시, 그야말로 신록의 맛 인생에는 가끔 처음 맛보는 듯한 감탄이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다. 그것은 마치 오랜 겨울을 지나 맞이한 첫 푸름, 봄을 지나 여름으로 넘어가는 순간에 맞닥뜨리는 신록과도 같다. 나에게 있어 히츠마부시가 그러했다. 그냥 장어덮밥이라 부르기에는 그 안에 깃든 정성과 질감, 그리고 시간이 너무나도 깊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한 그릇이다. 잘 구워진 장어가 윤기를 머금고 밥 위에 정갈히 놓여 있고, 반찬 몇 가지와 함께 나오는 소박한 상차림. 그러나 첫 숟가락을 들어올리는 순간, 나는 그 겸손한 겉모습 속에 숨겨진 격조를 깨닫게 된다. 부드럽게 구워진 장어의 결이 입 안에서 부서질 때, 그 향은 들풀 사이로 불어오는 여름 바람처럼 은근하고도 깊다. 첫 번째, 장어와 밥을 그대로 먹는다. 두 번째, 고명과 함께 .. 2025. 4. 24.
뉴잉 쥬시홀릭 창원 롯데백화점의 지하 식료품 코너에서 맥주 기획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냉장고 안에 진열된 아름다운 라벨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 한켠이 출렁이는데 그 찰나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몇 병의 맥주를 조심스레 품에 안고 돌아왔다. 그중에서도 ‘주시홀릭’이라는 이름의 병 하나가 유난히 마음을 끌었다. 뉴잉글랜드 스타일의 IPA. 참 오랜만이다. 뭔가를 따질 겨를도 없이 첫 모금부터 나는 이미 그 맛에 빠져들고 말았다. 잔에 따르는 순간부터 황금빛 탁함 속에서 과일의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복숭아, 감귤, 망고가 뒤섞인 듯한 향의 향연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아직 맛보기도 전에 이미 혀는 침을 머금었다. 한 모금 머금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아, 이거지. 바로 이거야.. 2025. 4. 23.
리코 GR3X 카메라 꾸미기 완성 리코GR3X 중고를 (놀라울 정도로 비싼 값에) 구매했으나 전 주인이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듯 그대로 사용하기는 좀 그랬다. 반품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과정이 너무 귀찮았다. 이렇게 내 손에 들어온 것도 인연이니 예쁘게 꾸며주겠다고 결심(자기 합리화)하고 알리익스프레스의 힘을 빌려 딱 내 스타일로 포장했다. 노르딕패턴 스킨을 씌워 자잘한 사용감을 감췄고, 스크래치가 많이 나있던 기본 렌즈링을 정품 그레이 컬러링으로 교체했다. 검은색 금속핫슈커버를 끼웠고 링케라는 브랜드의 핸드스트랩을 매 줬더니 없던 애정도 솟아날 만큼 시크한 어반 스타일 똑딱이 카메라로 거듭났다(어반에디션 저리 가!). 판매자가 끼워졌던 금속제 렌즈캡은 무겁고 스크래치도 많은 데다 실수로 떨어뜨렸을 때 소리가 요란해서 마.. 2025. 4. 22.
Just snap - 리코 GR3X GR1, GR2 사용할 때는 그 특유의 색감이 너무 맘에 안들어 무조건 흑백으로만 썼는데 GR3X은 꽤 맘에 드는 컬러를 만들어준다. 게다가 적절한 화각. 확실히 나는 28mm보다 40mm인듯. 2025. 4. 21.
갤럭시 S25울트라에서 S25 기본형으로 기변 경박단소병은 주기적으로 발병한다. 성능을 제일 가치로 두고 무게와 크기를 고려하지 않고 장비를 구성했다가 어느 순간 고질적인 어깨 통증에 질려서 다 정리하고 콤팩트 구성으로 바꾼다. 그러고는 또 시간이 좀 지나면 그래도 성능과 화질 아니나며 또 다 정리하고 거대한 바디와 렌즈들로 제습함을 채워나간다. 이 짓을 몇번째 반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핸드폰도 마찬가지다. 크기에 상관없이 넓은 화면과 성능을 추구하다 폴드까지 가놓고는 얼마전에 바꾼 S25울트라도 무겁고 크다고 와이프한테 줘버리고 S25 기본형으로 다운그레이드했다. 한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 놀랄만큼 가벼워서 만족스럽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러다 또 노안을 핑계대며거대한 폰으로 회귀하고 말 것임을. 그나저나 학교가면 애들이 이젠 폰으로도 .. 2025. 4. 20.
오늘의 길냥이 - 맹수 아람이 사냥 성공! 퇴근길, 아람이를 만났다. 고양이. 우리 아파트의 묘한 존재.그날 따라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았다.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림자처럼 웅크려 있었다.그리고 갑자기 번개처럼 달려갔다. 쥐 한 마리, 아람이는 그걸 물고 조용히 걸어 나왔다.누구에게도 자랑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칭찬을 바라지 않았다.아파트 주민 여러분!경비 아저씨들!이 조용한 포식자를 사랑해주세요.우리 곁의 작은 야성,우리를 위해 움직이는 이 고요한 생명을. 2025. 4. 19.
과테말라 엘 소코로 게이샤 게이샤 커피가 유명해진 계기는 조금 황당한 일화에서 시작된다. 한 커피 심사위원이 이 커피를 마시고는, “컵 안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한마디가 불씨가 되어,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이후 다양한 나라와 농장에서 앞다투어 ‘게이샤’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되었고, 이제는 한국의 외곽 지역 카페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물론, 가격이 저렴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넘사벽’까지는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게이샤라고 다 같은 게이샤가 아니라는 것. 생산지, 재배 농장, 가공 방식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다. 물론, ‘게이샤’라는 이름 아래 공통된 품종 특유의 향미가 어렴풋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건 마셔보면, ‘이.. 2025. 4. 18.
하루를 다시 시작하며 나는 일개 교사에 불과하다는 자각 속에서 살고 싶다.타인을 판단하기보다내 안을 오래 바라보고 싶다.어쩌면누군가의 세계에서 나는분명한 악일 수도 있다는 생각.그 생각을 가슴 깊은 곳에 담아두고 싶다.자기 확신이라는 단단한 벽이내 눈을 가리지 않기를.대단한 일이라는 말에서조용히 물러나해야 할 일을 그저 해야 할 만큼만 하기를.너무 가까이 가지 않기를.또 너무 멀어지지도 않기를.적당한 거리에서적당히 배려하며관계에 스스로를 내맡기지 않기를.남의 몫을 챙기면서도나의 몫도 오늘 하루 살아갈 만큼은 잊지 않기를. 2025. 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