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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러버의 다락방

밀릴 대로 밀려 정리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다이어리를 바라보는 심정. 그게 요즘의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주된 감정. 해야할 것을 하지 않고, 이뤄야할 것을 이루지 못하고,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며 그저 시간이라는 물결에 휩쓸려 흘러가고만 있는. 망연자실이라고 할만하다.

퇴근해서 쉬고 있는데 비행기 굉음이 들려 창가로 달려갔다. 통영 도민체전 개최를 축하하기 위한 블랙이글스의 에어쇼가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듣기는 했었는데 우리 집에서 그걸 보게될 줄은 몰랐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스스로를 맹금, 맹수라고 착각하고 사는 우리아파트 비둘기와 길냥이들이 비행기 소리에 식겁한듯 이리 저리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고. 아마 녀석들에게는 며칠전 오발령된 서울의 공습 경보와 같은 급의 재앙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태 종결후 현타가 온듯 앉아있는 비둘기 한마리와 봄이의 모습을 찍어보았다.

모든 지표들이 경보를 알리고 건너지 말라는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데도 괜찮다며 괜찮다며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길을 가는. 다름 아닌 당신, 그리고 우리.

무슨 말이라도 해야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때. 마음의 온도와 머리의 온도가 너무 달라 표정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이슬 방울들이 얼굴에 맺힐 때.

내죽도 공원 깊은 골목길 안에 이런 곳이 숨어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지냈다. 매장에서의 커피 판매보다는 원두 판매에 주력하고 있는 공감로스팅팩토리. 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탁자와 두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 그리고 카운터 좌석 두개가 있어 불편함을 감수하고 앉는다면 4명 정도는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커피에 진심인 사장님이 해주시는 이런 저런 이야기(원두를 직접 꺼내 향을 맡게 해 주실 정도로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다 보니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인생도처유상수라고 하더니 통영 곳곳에 은둔 고수들이 있다는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인퓨즈드 샤인머스켓. 커피 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인퓨즈드 커피, ..

시립도서관 앞을 지나가는데 시도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려 했는데 여학생 두 명이 겨울이라 부르며 시도를 반기고 있었다. 녀석은 나보다 여학생들이 좋은지 휙 돌아서 그들에게 가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여학생들이 먹을 걸 주지 않자 그제야 나를 바라보며 애옹거리기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츄르를 갖고 있지 않은 날이었다. 궁디 팡팡 몇 번 해주고 나니 내가 빈털터리라는 걸 눈치챈 녀석은 뒤도 안 돌아보고 제 갈 길을 향해 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겨울이, 또 누군가에게는 시도, 공공재인 길냥이의 이중 생활을 잠시 엿본 순간이었다.

집 근처에 이자까야가 생겼다고 하니 동네 주민으로서 그냥 있을 수 없어 다녀왔다. 조인수 부대찌개 옆, 식탁이라는 가정식 백반집이 있던 곳이었다. 오토시는 새싹 샐러드와 튀긴 건새우. 다마고멘치가츠 - 나쁘진 않았는데 약간 오버쿡 된 것 같은 느낌. 노른자가 조금 덜 익었으면 좋았을텐데. 이건 2년전 지금은 토라라는 이름으로 바뀐 진주 숙성회찬에서 먹었던 다마고멘치가츠, 개인적으로는 이정도의 익힘이 좋았다. 야끼우동 - 조금 밍숭맹숭. 맵기 조절이 가능하다는걸 주문하고 잠시 뒤에 알게되서 가능하면 안맵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조리가 이미 시작된 후 말씀 드렸던 탓에 양념이 약하게 들어가버린 듯 했다. 그냥 디폴트 상태의 메뉴를 먹었으면 더 맛있었을 것 같다. 다양한 종류의 하이볼(베이스 위스키는 제임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