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진진이의 나날들 (71)
코인러버의 다락방

진진이가 피씨방에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길래 집 근처에 있는 곳에 한번 가봤다. 내게 피씨방이란 야자 째고 도망간 애들 잡으로 가는 곳에 불과했고 대학 시절에 카트라이더 하러 한두번 가본거 빼고는 큰 인연이 없었기에 그곳의 결재 시스템이라던가 게임 방법 등이 모두 낯설었다. (피씨 게임은 거의 하지 않고 온리 콘솔 게임만 한다. 그것도 온라인은 즐기지 않는다.) 먹고 싶다는 튀김우동 컵라면과 사이다를 사주니 한시간 동안 참 잘도 놀더라. 나는 지루해 죽을뻔 했는데 ㅜ_ㅜ 메모장에다가 오늘 즐거웠다며 사장님께 감사하는 글까지 적어놓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 진진이는 다음주에도 가보자며 애교를 떨고 있다.
나와는 다르게 왼손잡이다. 그래도 나와 똑같이 비비빅을 좋아한다.
가야할 길은 이토록 높고 멀어 아득하기만 하다. 나의 삶이 온전히 너의 삶이 되어줄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며.
내 자식은 이렇게 방치해두고 남의 자식들을 챙기느라 내 모든 시간을 쏟고 있는 지금. 이게 가치가 있는 일일까 하는 생각이 스멀 스멀 기어나와 의지를 좀먹으려 든다. 매일같이 굳은 다짐을 하고 파이팅을 외쳐도 그건 혼자만의 아우성에 불과한가보다.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진 않겠지. 어린이집에서 나와 유치원을 가고 학교를 가고 원치 않는 일들을 하고, 원치 않는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가지 문제로 힘든 일들을 겪겠지. 그래도 항상 집에서만은 이렇게 꽃밭에 누워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
공부하는 모습을 보일 때 아빠 엄마가 제일 좋아한다는걸 깨달은 진진이는 진짜 공부를 하는게 아니라 공부 코스프레를 하면서 논다. 청학동 동원중학교라는 가상의 학교를 만들어서 쉬는 시간이랑 점심시간, 수업시간 등을 정해놓고 자기가 시험과 숙제 점수도 매기고 있다. 아빠는 원장 선생님이라고 불리다가 가끔은 두목님이 되기도 한다. 엄마는 엄마 선생님이다.
아무 생각없이 쉬고 싶었던 토요일. 어린이집에서 숲체험학습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녀옴. 집에 가자는 말을 입에 달고 있는 진진이와 오랜만에 아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험활동 끝날 때까지 있어야 한다고 했던 와이프. 이러나 저러나 맑은 공기와 따듯한 햇살 속에서 보낸 오후 한나절은 꽤 괜찮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