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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러버의 다락방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정말. 예전에는 안그랬는데 요즘은 학교에서의 나와 그 밖에서의 나를 철저히 분리시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린애들과 고슴도치 부모들에게 등신 취급 당하며 사는 모멸감을 버텨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엔데믹이 선포된지도 오래되었는데 마스크는 왜 그리 철저히 쓰고 다니냐고 묻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냥 웃음으로 넘기거나 남들에게 피해주고 싶지 않아서라고 얼버무리고 말지만 사실은 기억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빨리 잊혀지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 개학한지 거의 한달, 2학기 들어 처음으로 결석과 조퇴가 없는 날을 맞이했다. 출석부에 특이사항 기록할게 없으니 어색하더라. 종례하며 애들한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생활기록부를 검토하다보니 올해 개근상을 줄 수 있는 학생이 1명 밖에 없다. 어쩌다보니 개근이 스펙이 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지경의 일상화. 그야말로 뉴노멀이 아닌가.

1.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입시 위주의 교육이 한국을 망쳤다는 쌍팔년도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신들이 말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 계속 약화되어 온 지금 학생들의 인성은 더 좋아지고 대한민국은 나아졌나? 교육에 대해선 아무 고민도 안하면서 맨날 같은 소리만 해서는 바뀌는게 없다. 내가 졸업한 이후, 내 자식이 졸업한 이후에도 교육의 방향성에 제대로된 관심을 가질 때 나라도 함께 변할 것이다. 2. 한때는 학생들을 가족 처럼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들에게 선생은 너희의 부모나 삼촌이 아니니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라고 말한다. 누구보다 자주 만나다 보니 기본적으로 타인인 선생에게 자신의 가족에게 하듯 막무가내인 애들이 있다. 나는 내 자식도 예의 없이 굴면 혼낸다. 그들은 잘못해도 야단칠 수 없으니 내..

1. 수시(수시 혹은 입학사정관제, 학생부종합전형은 엄밀히 말하면 다른 개념이지만 입시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거의 같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니 하나로 묶어서 얘기하자.)를 축소하고 정시를 확대하자는 주장에 대해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늘어나고 사교육 시장의 확대로 인한 교육 빈부격차가 심해질 것이라며 반대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침묵했지만 이제는 반문하고 싶다. 우리나라 모든 상황에서 그 어떤 가치보다 공정을 중시하고 있는데, 다른 부분에 대한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공정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라 말하고 있는데 입시에서는 왜 그것을 적용해서는 안되는가? 사교육이 활성화되든, 학생들이 힘들든 개인이나 집단의 주관이 반영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고 절차적 공정성이 확보되는 수능 성적..

그러고보니 교사 생활하면서 보람이라는걸 마지막으로 느껴본게 언제였을까. 보람? 아직도 대한민국 교육계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기는 헌가? 닿지 않을 곳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것일 뿐이지. 미련에 빠져 포기하지 못한 채. 내가 정말 술을 끊을래야 끊을수가 없다. 맨 정신으로 버티는게 너무 힘든 나날이라. 에잇 빌어먹을 세상! 진짜!

첫 부장을 맡았던 날이다. 첫 학년 부장 업무가 시작됐던 날이다. 밤새 잠을 설치고 새벽 어둠 속의 길을 달려 무거운 침묵 속에 잠겨 있던 학교에 도착했다. 학년실의 문을 열고 첫날 무엇부터 해야할 지 정리하다보다 날이 밝아왔다. 창밖을 바라보니 첫 학생이 등교하고 있었다. 첫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비록 이후의 2년은 실패로 점철된 시간이었지만 저 때의 나는 분명 뒷목을 타고 오르는 순수한 고양감에 몸을 떨고 있었다. 사진을 통해 그 기억이, 그 감각이 다시 살아난다.

요즘 대학 수시 원서 쓰는 법이 달라져서 담임들이 아무것도 안 한다며 원서 쓰는 법은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니냐고 성토하는 글이 한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그 글에 동조한 사람들의 댓글을 보니 이미 교사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철밥통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잠시 그 글을 쓴 사람의 이야기에 대해 반박 해보자면 1. 수시 쓰기 전에 당연히 상담을 한다. 학생들에게 지원할 대학 리스트를 작성하게 하고, 그 대학들의 요강을 분석하며 대입 결과 예측 프로그램을 통해 합격 가능성을 계산한 후 전년도 몇년간의 입시 결과를 고려해 프로그램의 결과를 보정하여 학생에게 말해준다. 그 과정에서 적성에 맞는 다른 대학을 권유하기도 한다. 지원 가능한 6군데 중에 상향, 적정, 하향을 적절히 배분하게 지도하며 적어도 한 개 정도는..

연세대학교 재학생 3명이 학내 청소 및 경비 노동자들의 집회로 인해 학습권을 침해당했다고 노조를 고소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우리나라 대입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절망감을 느꼈다. 고소한 학생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 수가 없어 추측에 불과하지만 지금 재학생이라면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합격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들은 분명 대입 필수요소인 자기소개서의 3번 질문인 학생시절 실천한 나눔과 배려에 대한 내용을 누구보다 멋지게 채워넣었을 이들이다. 대학교 입학 전에 타인에 대한 이해심과 배려심, 봉사정신이 그렇게 투철했을 인재들이 연세대학교에 입학해 몇년을 지내면서 청소노동자들이 왜 시위를 하는지를 이해하고 배려할 마음을 완전히 버려버린채 오직 자신들의 수업에 방해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고소할 정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