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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ary thought/As teacher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본 교사가 쓰레기가 되는 과정 - 수시 원서 접수 시작에 즈음하여

by coinlover 2022. 9. 14.

요즘 대학 수시 원서 쓰는 법이 달라져서 담임들이 아무것도 안 한다며 원서 쓰는 법은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니냐고 성토하는 글이 한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그 글에 동조한 사람들의 댓글을 보니 이미 교사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철밥통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잠시 그 글을 쓴 사람의 이야기에 대해 반박 해보자면

1. 수시 쓰기 전에 당연히 상담을 한다. 학생들에게 지원할 대학 리스트를 작성하게 하고, 그 대학들의 요강을 분석하며 대입 결과 예측 프로그램을 통해 합격 가능성을 계산한 후 전년도 몇년간의 입시 결과를 고려해 프로그램의 결과를 보정하여 학생에게 말해준다. 그 과정에서 적성에 맞는 다른 대학을 권유하기도 한다. 지원 가능한 6군데 중에 상향, 적정, 하향을 적절히 배분하게 지도하며 적어도 한 개 정도는 합격 가능한 대학을 상정해둔다. 학생에 따라서는 3-4번 이상의 상담이 필요해지기도 한다. 고집이 세거나 학원의 지도에 경도되어 있는 학생의 경우 담임의 말을 안 듣는데 그때는 학생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결국 개인의 입시 결과는 학생들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진학사나 유웨이 등의 원서 접수 사이트를 통해 개인이 원서를 쓰는 시스템으로 바뀐지는 꽤 오래 되었다. 하지만 고3 시절은 대부분의 학생이 처음 겪는 것이기에 원서 쓰는 방법을 가르친다. 나의 경우는 처음 써보는 한 개의 원서는 같이 쓰면서 원서 쓰는 방법을 가르쳤다. 다른 교사들도 원서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원서를 쓰는 것 자체는 학생이 직접 해야 한다. 교사가 원서를 함께 써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항의하는 학부모도 있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 수 있다. 지금 한 반의 학생이 24명 정도에 개인당 6장을 쓴다고 가정하면 144장을 함께 써야 하는 건데 그걸 일일이 함께 하면 수업이나 다른 업무를 처리해낼 수 없다. 게다가 개인 인터넷 단말기를 사용하거나 집에 가서 쓰는 학생들까지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남의 일이라면 그게 왜 불가능하냐며 쉽게 말하곤 한다. 그렇다고 그냥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원서 쓰는 게 헷갈린다고 도움을 요청하면 당연히 함께 해주고 원서를 다 쓴 뒤에는 제대로 지원했는지 발송해야 할 서류는 무엇인지 챙긴다. 문제는 상담할 때 합의했던 것과 다른 대학들을 써놓고 떨어지는 학생들이다. 요즘 학생들 생각보다 선생들 말 잘 안 듣는다.

3. 위의 내용들이 일반적인 고3담임들이 수시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일들이다. 그 글을 쓴 이에게 딸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담임이 수시 상담을 안 해줬는지? 원서 쓰는 법에 대해 안내를 안 했는지? 원서 쓰는 게 헷갈린다고 했는데도 도와주지 않은 건지? 만약 그렇다면 그 담임이 이상한 것이니 반드시 항의를 해야 한다. 담임이 이상의 일들을 모두 했는데도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요즘 교사들 아무것도 안 한다는 글을 쓴 거라면 글쓴이는 열심히 하고 있는 한 교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리돌림 당하도록 조장한 것이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거대한 벽을 마주하고 홀로 소리치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 답답함과 막막함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세상의 모든 직업인들은 다 나름의 고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직 미성숙한 인격체들을 성숙하게 대해야 하는 일만큼 자존감에 상처 입기 쉬운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