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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ary thought/As coinlover318

비극적 결함 '비극의 주인공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너무 늦게 깨닫게 되는 비극적 결함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학생들이 가진 그 비극적 결함이 어설프게나마 눈에 보이기에 방향을 바꿔보려 노력하지만 주체들의 자각이 없는 이상 절대로 고쳐지지는 않을 것이므로 나는 항상 좌절한다. 비극의 행로를 바라 보고 있는건 힘들지만 그것이 인생 전체에 있어서의 파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저 고등학교 생활의 결과로 맞이할 당분간의 어려움을 보는 것에 불과하기에 깊이 개입할 수는 없다. 내가 조금 더 살아본 입장에서 아직 어린 그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듯 누군가는 나의 행로를 바라보며 내가 깨닫지 못한 비극적 결함을 안타까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019. 12. 26.
심상의 폐허 속에서 나날이 깊어지며 나날이 흩어지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심상의 폐허 속에서 길을 찾고 길을 잃는 일상을 반복하는 것. 2019. 12. 13.
삶이 지속될수록 깊어지는 것 삶이 지속될수록 깊어지는 것 중 하나는 걱정이리라. 어떤 일이든 담담히 받아들일만큼 충분히 강하면 괜찮을 터인데 능력이 없으니 걱정만 늘어가는 것이 아닌지. 2019. 12. 12.
민식이법의 좌절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이들을 보호하자는 법안을 인질로 삼는다. 사랑하는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슬픔을 이용하고 져버린다. 거기에 한술 더떠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에 정당성을 더해주기 위해 그 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몰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검게 물든 심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오물보다 못한 오염된 언어들. 정치를 승자독식의 게임이라고 인식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려는 악의 축들.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는 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가 하늘이 생각하는 정의와 일치하기를 기도할 뿐이다. 정치인들의 대부분이 무신론자에 사후 세계를 믿지 않겠지만. 설마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런 식으로 삶을 살아가지는 않을테니까. 2019. 12. 1.
명료함이라는 한계를 넘어 내 사진은 너무 명료하다. 많은 리뷰어들에게 지적 받았고 그로 인해 자주 고배를 마셨다. 오랜 시간 동안 근대적 사관에 따라 역사의 인과관계를 생각해왔던 터라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별 관계가 없는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 사진의 성향에도 영향을 주었을거라 생각한다. 그랬다. 나는 사진을 참 정직하게 찍어왔다. 의미없는 모호함을 견디지 못했다. 의미가 곧바로 드러나는 사진은 사람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가지 못한다. 곱씹을수록 다양한 의미로 확장되어 나가는 모호함이야 말로 컨템포러리 사진의 미덕이라고 들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분명 근대적 사진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맞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 속에 그 시대의 담론이 녹아들어가 있다면, 보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동시대의 .. 2019. 11. 27.
5년이 밀려오다 공립고등학교에서 한 교사가 근무할 수 있는 연한은 5년. 그리고 이제 고성중앙고에서의 5년이 채워져 간다. 신규 발령이라 멋모르고 그저 좋았던 남해제일고의 5년, 교사로서도, 사진가로서,도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도 가장 활발하게 뭔가를 이루고 발전했던 진주고의 5년. 그에 비해 고성중앙고에서의 5년은 인생에서 가장 긴 침체기라고 할 정도로 부침을 많이 겪었다. 두번의 장례식, 가족의 잦은 입원과 수술, 집안의 크고 작은 비극,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때린 몇차례의 뒷통수, 그리고 깔끔하지 못했던 절교. 학교에서도 예전만큼 인간적 교류를 하지 못했고 그것은 학생들과도 마찬가지였다(이전 학교에 비해 상대적). 사진 작업 또한 쉼없이 해왔지만 이렇다할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고 슬럼프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 2019. 11. 26.
저물어가는 2010년대에 대하여 인생을 살면서 몇개의 변곡점을 지나왔을까? 한순간에 미치도록 집중했던 것들. 이들이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 나를 이루고 있던 여러 요소들이 서서히 바껴갔던 그 순간들을 나는 몇번이나 경험하였던가? 저물어가는 2010년대를 기준으로 정리해봐야할 때가 온 것 같다. 2019. 11. 18.
홀로 뜨는 달 저 달처럼 홀로 떠 외로움에 몸서리를 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져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은 칼로 자른 듯 끊어내고 그 끝을 인두로 지져 미련의 실밥이 나풀거리지 않게 하리. 2019. 11. 7.
해방구 이런 세상에서도 해방구를 찾아 헤매야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왜 정신적 도피처를 갈구해야하는가? 2019. 10. 30.
김밥집 아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와 결혼해 바깥 생활이라고는 전혀 해본 적 없으신 어머니는 호구지책으로 은행의 식당에서 일을 하시다가 갑자기 보험외판원이 되셨다. 붙임성 있는 성격은 아니셨던 어머니께서 그 시절의 보험 영업을 어떻게 하셨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본거라고는 저녁 무렵 무거운 가방을 들고 우리 동네로 돌아오는 모습뿐이었으니까. 영업에 맞는 타입이 전혀 아니므로 아마 무진장 고생을 하셨을거다. 그렇게 2년여 동안 그 일 하시며 모은 돈으로 천전시장에 분식점을 개업하셨다. 칠암 김밥이라는 이름의 이 식당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시절 가을 운동회 즈음에 오픈했고 군 복무를 한참 하고 있던 2000년에 폐업했다. 그 식당에서 나는 김밥을 먹고, 수제비를 먹.. 2019. 10. 16.
세월이 만들어준 시그니처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가면 장인의 손으로 깎아만든 것이 아닌 주물틀에 찍어낸 기성품이라도 의미를 가진 어떤 것이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 1000개의 양산품이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 하나 사라져 간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는 그 자체로 역사가 될 수 있을거라 믿으며. 흔한 여염집 대문에 내려앉은 빛을 바라보다가. 2019. 10. 5.
슬픈 개천절, 하늘은 푸른데.... 복잡 미묘하고 불편한 감정의 근원에는 슬픔이 존재하고 있었다. 돈 2만원에 동원되었든, 자신의 신념에 따라 나섰든 많은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상식과는 다른 길 위에 서있었다는 것. 그 사람들과의 합의는 불가능할 것이고 어느 한쪽이 포기하고 사라져야 이 모든 갈등이 해결될 것이라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슬픔. 다시 등장한 서북청년단의 이름과 휘날리는 일장기를 바라보며 강제합방을 맞이하기 전 일진회가 저런 활동을 했겠거니 싶어 긴 한숨을 나왔다. 사람이 만들어낸 미세먼지 같은 답답함에 창밖을 바라보니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이토록 청명하기만 하다. 풍경에 기대어 이 슬픔을 이겨내 보기로 한다. 2019. 10. 3.
보이지 않는 손과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음모론에 경도되는 편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분명 뒤에서 암약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혹은 그들은 대체 누구일까? 그것의 실체가 없다면 악의에 가득찬 이 선동은, 광기로 가득찬 마녀사냥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민족주의를 부정하는 우파, 인권을 신경쓰지 않는 좌파, 합리성에 기초하지 않은 중도.... 모든 세력에서 보이는 이 설명할 수 없는 궤도 이탈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등장 없이는 해결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을 그들은 대체 어떤 미래를 바라는 것인가? 그들이 기대하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2019. 9. 27.
수용한계치에 대하여 한달여에 걸친 긴긴 이사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깨달은 것인데 한 공간에 담을 수 있는 물건의 양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걸 무시하고 이곳 저곳에 쌓아가다보면 결국 재앙을 맞이하게 된다. (새 집의 공간은 이미 꽉꽉 들어찼는데 남아있는 이사짐이 사다리를 타고 끝도없이 올라오는게 그렇게 공포스럽게 느껴질 줄은 정말 몰랐다.) 사람의 감정도 이와 같은 것이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한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감정의 양에는 분명 한계치가 있다. 사람들이 왜 나를 싫어하는가? 왜 내가 하는 말은 다 고깝게 듣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 한 사람이 있다. 평소의 그를 보면 건드리지 않아도 될 것, 지적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끊임없이 걸고 넘어진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로부터 받는 부정적 감정들을 꾸역꾸역 수용하느.. 2019. 9. 26.
휴거와 노스트라다무스와 중간고사 1992년의 휴거설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면 모두 기억할 것이다. 골목 곳곳에 뿌려지던 묘한 그림이 그려져 있던 전단지들. 짐승의 수 666의 징표인 바코드를 받으면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다며 목청 높여 전도 하던 사람들. 우리 집에서 진주남중학교 가는 길의 건물 지하에 휴거를 주장하던 다미선교회 지부가 있었고 나는 그 앞을 지날때마다 착하게 살아야지 하며 나를 돌아봤다. 물론 그 결심은 학교 가면 사라져 버릴 정도로 소소한 것이었지만. 휴거가 다가오던 그날까지 착한 삶을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고 또 금방 잊어버리는 날들이 쌓여 어느새 휴거로 설정된 그날이 다가왔다. 나는 너무 슬픈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며 불성실했던 지난 날을 안타까워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다. TV뉴스에서는 길가에 .. 2019. 9. 23.
낮에 나온 달 낮에 나온 달은 슬프다. 세상이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했기에 말도 안되는 모함과 질시 그리고 어이없는 배척이 따른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달을 슬프게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2019.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