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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ary thought534

그의 꿈을 응원하며 고성중앙고에서의 마지막 근무날. 모델이 되고 싶다는 제자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학교로 불러 프로필 사진을 몇컷 찍어주었다. 내 제자 중에서 가장 잘생겼던 형우야 멀리서나마 너의 성공을 기원하마. 몇번이고 좌절하고 몇번이고 울분을 참아내야하겠지만 자신을 믿고 달려가다보면 어느새 목표했던 곳에 서있는 스스로를 만나게 될거다. 2020. 2. 11.
올해는 올해는 거부당하는 일보다 받아들여지는 일이 더 많기를, 수많은 O와 X의 발판들 중에서 O위에 서는 경우가 더 많기를. 2020. 1. 3.
비극적 결함 '비극의 주인공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너무 늦게 깨닫게 되는 비극적 결함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학생들이 가진 그 비극적 결함이 어설프게나마 눈에 보이기에 방향을 바꿔보려 노력하지만 주체들의 자각이 없는 이상 절대로 고쳐지지는 않을 것이므로 나는 항상 좌절한다. 비극의 행로를 바라 보고 있는건 힘들지만 그것이 인생 전체에 있어서의 파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저 고등학교 생활의 결과로 맞이할 당분간의 어려움을 보는 것에 불과하기에 깊이 개입할 수는 없다. 내가 조금 더 살아본 입장에서 아직 어린 그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듯 누군가는 나의 행로를 바라보며 내가 깨닫지 못한 비극적 결함을 안타까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019. 12. 26.
심상의 폐허 속에서 나날이 깊어지며 나날이 흩어지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심상의 폐허 속에서 길을 찾고 길을 잃는 일상을 반복하는 것. 2019. 12. 13.
삶이 지속될수록 깊어지는 것 삶이 지속될수록 깊어지는 것 중 하나는 걱정이리라. 어떤 일이든 담담히 받아들일만큼 충분히 강하면 괜찮을 터인데 능력이 없으니 걱정만 늘어가는 것이 아닌지. 2019. 12. 12.
민식이법의 좌절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이들을 보호하자는 법안을 인질로 삼는다. 사랑하는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슬픔을 이용하고 져버린다. 거기에 한술 더떠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에 정당성을 더해주기 위해 그 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몰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검게 물든 심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오물보다 못한 오염된 언어들. 정치를 승자독식의 게임이라고 인식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려는 악의 축들.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는 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가 하늘이 생각하는 정의와 일치하기를 기도할 뿐이다. 정치인들의 대부분이 무신론자에 사후 세계를 믿지 않겠지만. 설마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런 식으로 삶을 살아가지는 않을테니까. 2019. 12. 1.
명료함이라는 한계를 넘어 내 사진은 너무 명료하다. 많은 리뷰어들에게 지적 받았고 그로 인해 자주 고배를 마셨다. 오랜 시간 동안 근대적 사관에 따라 역사의 인과관계를 생각해왔던 터라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별 관계가 없는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 사진의 성향에도 영향을 주었을거라 생각한다. 그랬다. 나는 사진을 참 정직하게 찍어왔다. 의미없는 모호함을 견디지 못했다. 의미가 곧바로 드러나는 사진은 사람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가지 못한다. 곱씹을수록 다양한 의미로 확장되어 나가는 모호함이야 말로 컨템포러리 사진의 미덕이라고 들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분명 근대적 사진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맞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 속에 그 시대의 담론이 녹아들어가 있다면, 보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동시대의 .. 2019. 11. 27.
5년이 밀려오다 공립고등학교에서 한 교사가 근무할 수 있는 연한은 5년. 그리고 이제 고성중앙고에서의 5년이 채워져 간다. 신규 발령이라 멋모르고 그저 좋았던 남해제일고의 5년, 교사로서도, 사진가로서,도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도 가장 활발하게 뭔가를 이루고 발전했던 진주고의 5년. 그에 비해 고성중앙고에서의 5년은 인생에서 가장 긴 침체기라고 할 정도로 부침을 많이 겪었다. 두번의 장례식, 가족의 잦은 입원과 수술, 집안의 크고 작은 비극,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때린 몇차례의 뒷통수, 그리고 깔끔하지 못했던 절교. 학교에서도 예전만큼 인간적 교류를 하지 못했고 그것은 학생들과도 마찬가지였다(이전 학교에 비해 상대적). 사진 작업 또한 쉼없이 해왔지만 이렇다할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고 슬럼프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 2019. 11. 26.
저물어가는 2010년대에 대하여 인생을 살면서 몇개의 변곡점을 지나왔을까? 한순간에 미치도록 집중했던 것들. 이들이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 나를 이루고 있던 여러 요소들이 서서히 바껴갔던 그 순간들을 나는 몇번이나 경험하였던가? 저물어가는 2010년대를 기준으로 정리해봐야할 때가 온 것 같다. 2019. 11. 18.
마지막 기숙사 사감 근무를 마치며 (아마도) 마지막이 될 기숙사 사감근무를 마쳤다. 이 학교에서의 5년도 서서히 막을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큰 의미 부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마지막 근무라고 그동안 사감을 하며 맞이했던 아침들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하늘이 새삼스럽게 고맙다. 남해제일고에서 진주고 그리고 고성중앙고까지 어쩌다보니 기숙사 있는 학교로만 돌아다녔고 많든 적든 매년 기숙사 사감 근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남해제일고에서 사감부 전담 교사로 일하며 기숙사 있는 학교로는 절대 가지 않을거라고 했는데 진주고로 전근간지 몇년 안되서 기숙사가 생겼고, 고성중앙고는 기숙사가 있는지도 모르고 왔다가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다음에 옮길 학교에는 제발 기숙사가 없길 ㅠ_ㅠ 2019. 11. 10.
국가의 백년지대계인 교육, 이루지 못할 개혁의 미망 아무리 교육 제도를 개편한들 학생들이 편해지는 날이 올까?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는 제도 개혁이 무슨 의미를 지닐 것인가? 어떤 현인이 나타나도 해결하지 못할 난제가 몇가지 있으니 그중의 하나가 대한민국의 교육문제이리라. 뉴스에서 떠들어 대는 교육제도 개혁안을 보며 모두가 행복해지는 교육이란 결국 제도권 교육이 모두 혁파될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미친 생각을 해본다. 2019. 11. 7.
홀로 뜨는 달 저 달처럼 홀로 떠 외로움에 몸서리를 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져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은 칼로 자른 듯 끊어내고 그 끝을 인두로 지져 미련의 실밥이 나풀거리지 않게 하리. 2019. 11. 7.
해방구 이런 세상에서도 해방구를 찾아 헤매야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왜 정신적 도피처를 갈구해야하는가? 2019. 10. 30.
김밥집 아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와 결혼해 바깥 생활이라고는 전혀 해본 적 없으신 어머니는 호구지책으로 은행의 식당에서 일을 하시다가 갑자기 보험외판원이 되셨다. 붙임성 있는 성격은 아니셨던 어머니께서 그 시절의 보험 영업을 어떻게 하셨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본거라고는 저녁 무렵 무거운 가방을 들고 우리 동네로 돌아오는 모습뿐이었으니까. 영업에 맞는 타입이 전혀 아니므로 아마 무진장 고생을 하셨을거다. 그렇게 2년여 동안 그 일 하시며 모은 돈으로 천전시장에 분식점을 개업하셨다. 칠암 김밥이라는 이름의 이 식당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시절 가을 운동회 즈음에 오픈했고 군 복무를 한참 하고 있던 2000년에 폐업했다. 그 식당에서 나는 김밥을 먹고, 수제비를 먹.. 2019. 10. 16.
세월이 만들어준 시그니처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가면 장인의 손으로 깎아만든 것이 아닌 주물틀에 찍어낸 기성품이라도 의미를 가진 어떤 것이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 1000개의 양산품이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 하나 사라져 간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는 그 자체로 역사가 될 수 있을거라 믿으며. 흔한 여염집 대문에 내려앉은 빛을 바라보다가. 2019. 10. 5.
슬픈 개천절, 하늘은 푸른데.... 복잡 미묘하고 불편한 감정의 근원에는 슬픔이 존재하고 있었다. 돈 2만원에 동원되었든, 자신의 신념에 따라 나섰든 많은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상식과는 다른 길 위에 서있었다는 것. 그 사람들과의 합의는 불가능할 것이고 어느 한쪽이 포기하고 사라져야 이 모든 갈등이 해결될 것이라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슬픔. 다시 등장한 서북청년단의 이름과 휘날리는 일장기를 바라보며 강제합방을 맞이하기 전 일진회가 저런 활동을 했겠거니 싶어 긴 한숨을 나왔다. 사람이 만들어낸 미세먼지 같은 답답함에 창밖을 바라보니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이토록 청명하기만 하다. 풍경에 기대어 이 슬픔을 이겨내 보기로 한다. 2019.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