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mentary thought534 보이지 않는 손과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음모론에 경도되는 편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분명 뒤에서 암약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혹은 그들은 대체 누구일까? 그것의 실체가 없다면 악의에 가득찬 이 선동은, 광기로 가득찬 마녀사냥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민족주의를 부정하는 우파, 인권을 신경쓰지 않는 좌파, 합리성에 기초하지 않은 중도.... 모든 세력에서 보이는 이 설명할 수 없는 궤도 이탈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등장 없이는 해결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을 그들은 대체 어떤 미래를 바라는 것인가? 그들이 기대하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2019. 9. 27. 수용한계치에 대하여 한달여에 걸친 긴긴 이사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깨달은 것인데 한 공간에 담을 수 있는 물건의 양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걸 무시하고 이곳 저곳에 쌓아가다보면 결국 재앙을 맞이하게 된다. (새 집의 공간은 이미 꽉꽉 들어찼는데 남아있는 이사짐이 사다리를 타고 끝도없이 올라오는게 그렇게 공포스럽게 느껴질 줄은 정말 몰랐다.) 사람의 감정도 이와 같은 것이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한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감정의 양에는 분명 한계치가 있다. 사람들이 왜 나를 싫어하는가? 왜 내가 하는 말은 다 고깝게 듣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 한 사람이 있다. 평소의 그를 보면 건드리지 않아도 될 것, 지적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끊임없이 걸고 넘어진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로부터 받는 부정적 감정들을 꾸역꾸역 수용하느.. 2019. 9. 26. 휴거와 노스트라다무스와 중간고사 1992년의 휴거설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면 모두 기억할 것이다. 골목 곳곳에 뿌려지던 묘한 그림이 그려져 있던 전단지들. 짐승의 수 666의 징표인 바코드를 받으면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다며 목청 높여 전도 하던 사람들. 우리 집에서 진주남중학교 가는 길의 건물 지하에 휴거를 주장하던 다미선교회 지부가 있었고 나는 그 앞을 지날때마다 착하게 살아야지 하며 나를 돌아봤다. 물론 그 결심은 학교 가면 사라져 버릴 정도로 소소한 것이었지만. 휴거가 다가오던 그날까지 착한 삶을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고 또 금방 잊어버리는 날들이 쌓여 어느새 휴거로 설정된 그날이 다가왔다. 나는 너무 슬픈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며 불성실했던 지난 날을 안타까워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다. TV뉴스에서는 길가에 .. 2019. 9. 23. 낮에 나온 달 낮에 나온 달은 슬프다. 세상이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했기에 말도 안되는 모함과 질시 그리고 어이없는 배척이 따른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달을 슬프게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2019. 9. 21. 경계 나는 언젠가 선연하게 그어진 경계를 넘어 바라보는 것만 가능했던 그곳에 다다를 수 있을까. 2019. 9. 18. 한장의 사진 사진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에는 다양한 기법 연구를 열심히 했었는데 요즘은 그냥 스트레이트 하게 찍는데만 집중하다보니 기교를 부린 사진이라는걸 찍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장의 사진이 주는 임팩트가 가장 빛났던 역시 그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언제부터 단장 사진의 재기발랄함보다 시리즈를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의 전달에 집중하게 되었을까? 온빛사진상을 받았던 그때 이후였을까? 2019. 8. 10. 성남극장 사진을 보며 아카이빙을 생각하다 지금은 없어진 진주 성남극장의 사진. 한때는 교회였다가, 또 한시절은 극장으로 사용되다가 이제는 공원 조성을 위한 공간으로 비어있는 곳. 이 사진은 성남극장의 사진을 남겨놔야겠다는 대단한 의무감으로 찍은 것이 아니라 45mm F2.8 PC렌즈를 사고 며칠이 지났던 토요일 퇴근하고 집까지 걸어오면서 렌즈 테스트겸 찍은 사진이다. 대단한 목적을 가지고 찍은 사진이 아니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의 역사 기록이 되어 있다. 진주시의 역사 뿐만 아니라 나 개인의 역사도 같이 남아 있는 것이다. 고2때 성당 고등부 애들이랑 인디펜던스데이를 보러갔던 흐렸던 여름날. 고3때 홍래, 기택이랑 접속이란 영화를 보러갔던 2학기 중간고사 기간의 오후 그 시간대의 빛 등 사진을 통해 자동 재생되는 지나가 버린 시간이 그 속에 있다.. 2019. 7. 30. 컨템포러리를 추구하는 몇몇 사진가들의 착각 플랫하게 찍는 것과 못찍는 것은 다른 것. 이건 내가 했던(사실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가장 큰 착각이기도 한데 그건 힘을 빼고 찍은게 아니라 그냥 사진을 못찍은거다. 2019. 7. 30. 사진 사진을 찍는다는게 좋았던 것 중 하나는 대부분의 작업을 혼자서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홀로 사색하면서 사진을 찍는다는건 더할나위 없는 즐거움이었다. 카메라 하나 들고 어딘가를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에는 묘한 만족감이 공갈빵처럼 부풀어 오르곤 했다. 그런데 사진을 시작한지 꽤 오래됐던 어느 시점부터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타고난 히키코모리인 나에게는 그것이 정말 큰 고역 중 하나였고 너무 좋아하던 사진이 싫어진 것처럼 느껴졌던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었다. 때로는 너무 번잡하고 때로는 민망하게 느껴지는 관계 속에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나를 보고 있는게 너무 슬펐다. 사실 나는 단 한순간도 사진이 싫었던 적이 없었다. 그래 그게 사실이다. 사진 외적인 것이 주는 괴로움을 사진이 주는 .. 2019. 6. 27. 슬픈 반면교사 사람들을 끌어당길 매력이나 다른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는 뛰어난 업무추진력, 구성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독여줄 수 있는 공감력 등이 없는 이에게 투철한 신념만이 존재할 때 그가 속한 조직은 얼마나 힘들어질 수 있는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별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슬픈 일이지만 늦지 않게 반면교사를 만나 깨달음을 얻은 것은 나에게도, 내가 속해있는 혹은 앞으로 속할 조직에게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올해는 학년부장님도, 학년 구성원들도 모두 잘만나 맘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작년 우리 부서 상황을 돌아보면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매력도, 능력도, 공감능력도 없었던 리더, 그게 딱 나였던 것 같아서. 2019. 6. 24. 자정무렵의 단상 1. '노회하다' 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보는 요즘이다. 이 단어의 뜻을 몇년간 곱씹어왔다면 하지 않았을 실수가 많았을텐데. 늦게나마 깨달아서 다행이긴 하다. 2. 내게 사람보는 눈이 없다는건 확실하니 사람에 기대지 말고 묵묵히 걸어가라. 홀로 걷는 숲속의 코끼리처럼 3. 올해의 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인내와 경외심. 2019. 6. 10. 관계의 역린 누구에게나 건드려서는 안될 역린이 있다. 사람들은 때때로 그것을 모르고, 혹은 알고도 일부러 건드려 파국을 맞이한다. 나에게도 인간관계와 관련된 역린이 하나 있는데 나에 대해 안다. 내가 네 성격을 아는데..... 와 같이 상대방이 나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투의 말을 하면 이전까지 아무리 좋았던 사람이라도 갑자기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겨우 며칠, 몇달, 몇년 나를 보고 마치 네가 그렇지 하는 느낌으로 말하는 사람이 싫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를 봐온 내 가족도, 몇십년을 알아온 내 친구들도 함부로 쓰지 않는 그말을 어찌 그리 쉽게 내뱉는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절대 쓰지 말아야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잘아는 사람은 절대로 없다. 당신 기준에 맞춰 잘안.. 2019. 3. 4. 또 한번 마음이 꺾이다 또 한번 마음이 꺾이다. 무엇을 해야할지 방향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순간. 분명 다시 털어내고 터벅 터벅 걸어가겠지만 나는 여기까지인가 하는 허탈함이 밀려오는건 어쩔 수가 없다. 2019. 2. 13. 아득한 바다 저멀리 산 설고 물길 설어도 아침 바다를 보며 앉아 있자니 왠지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이번에도 기대를 하지 않았건만.... 첫 관문을 통과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의미 없는 자기만족에 불과한게 아닐까 싶은 회의감에 얼마나 오랜 시간을 힘들어했던가. 2019. 1. 8.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일들 올해 부장을 맡은 이유는 지금 같은 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이지. 이건 온전히 3년 동안 내 아이들과 함께 해온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이 비난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건 당시의 내게는 너무 비도덕적으로 보이는 일이었지. 집에 돌아와서 이 글을 쓰다보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뭘 그리 열을 냈나. 이렇게 될 것을, 이런 말을 들을 것을 다 알면서 시작한 일에. 그래도 함께해서 행복했다. 얘들아.지금의 이 설움은 너희와 함께한 시절을 위해 지급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할게. 아마 다시 3년전으로 돌아가도 나는 이 학년의 담임을 맡고 너희와 같이 울고 웃었던.... 지금과 같은 결말을 선택하게 될거야. 2018. 12. 17. 마음을 다시 잡아야 할 무렵 내게 너무나 소중했던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게 되어버린 지금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내 진심을 털어놓던 이 공간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을 다시 잡아야할 때가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루종일 아파서 괴로워하다보니 오히려 머리는 맑아지는 듯. 2018. 12. 15. 이전 1 ··· 6 7 8 9 10 11 12 ··· 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