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진은 너무 명료하다.
많은 리뷰어들에게 지적 받았고
그로 인해 자주 고배를 마셨다.
오랜 시간 동안 근대적 사관에 따라
역사의 인과관계를 생각해왔던 터라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별 관계가 없는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 사진의 성향에도 영향을 주었을거라 생각한다.
그랬다. 나는 사진을 참 정직하게 찍어왔다.
의미없는 모호함을 견디지 못했다.
의미가 곧바로 드러나는 사진은 사람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가지 못한다.
곱씹을수록 다양한 의미로 확장되어 나가는 모호함이야 말로
컨템포러리 사진의 미덕이라고 들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분명
근대적 사진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맞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 속에 그 시대의 담론이 녹아들어가 있다면,
보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동시대의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여전히 나는 모호한 사진을 찍지 못한다.
사진 속에 귀기나 한국적인 정서를 담는다거나
사진과 대화를 나눈다는 그런 수준까지는 앞으로도
올라가지 못할 것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피안의 세계를
바라보는 일은 내게 절대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의 사진이 명료하듯 나의 한계도 그렇게 명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찍는 정직한 사진들이
이 시대에 해야할 어떤 이야기들의 편린이나마 담을 수 있기를
염원하며 오늘도 한장 한장 진부할지도 모르는 프레임을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