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규 발령받았을 때는 초심자에 대한 배려라는 어드밴티지가 있었다. 그래서 남해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이해받았던 것 같다. 2. 첫 발령지에는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들께서 많이 계셨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고 언제나 데리고 다니시며 챙겨주셨다. 일이 힘들었을지언정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3. 진주고등학교로 옮긴 이후에도 상황은 같았다. 모교였고, 학교 선배님께서 부장을 맡으신 학년의 기획으로 업무를 시작했으니 열정에 넘쳤고 모든 부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여전히 같은 학교에 은사님들이 많이 계셨고 학교 선배님들도 많으셨기에 모두들 내게 우호적이었다. 4. 고성중앙고로 전근 간 후에도 비슷했다. 고1 때 담임 선생님께서 교무부장을 맡고..
아침에 커피 마시다가 생각해본 현대 미술과 와인, 위스키, 커피의 공통점 1.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 2. 사람마다 하는 말이 다 다르다. 3. 하지만 오래 듣고 있다보면 느끼는 것도 말하는 것도 규격화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4. 사실 제대로 이해하고(느끼고)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절대적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들 한다. 5. 하지만 기준을 정하는 사람 혹은 자본이 있고 그들에 의해 시장이 주도된다. 6. 해설가와 비평가(평가자)가 존재하며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들이 있다. 7. 그 용어들이란 한글로 번역하면 이해도 쉽고 것 아닌 경우가 많은데 원어를 한국식 발음으로 사용하고 표기해서 입문자를 헷갈리게 만든다. 8.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말도 계속 듣다 보..
1. 게이샤를 마셨다. 요몇년간 가장 핫하고 비싸다는 원두.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취향과는 엄청 멀었다. 이렇게 기록을 해두는 건 시간이 지난 뒤에 내 평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지표를 남겨두기 위해서다. 산미가 두드러졌고 다양한 풍미가 섞여 있다는건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들이 내게는 그리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단 하나의 맛이라도, 단 하나의 향이라도 내게 맞는 것이 중요하지 맞지 않는 것이 수없이 펼쳐진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커피 초보에 불과한 내가 아직 감당하지 못할 만한 깊이의 커피를 만나 그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테다. 2. 사람들이 커피나 위스키, 와인 등에 빠져드는 이유는 그것들의 맛과 향이 가지는 모호함에 있다. 정답이 정해진 직설적인 맛이 아..
꼰대는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기준만 내세우는 사람은 노소에 상관없이 꼰대다. 회식을 무조건 강요하는 것도 문제, 회식은 무조건 불필요하다는 것도 문제. 누구든 상황에 맞게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꼰대인거다. 요즘 젊은 애들이 자기랑 맞지 않는 가치들은 모두 고루한 것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자신들이 싫어하는 이들의 행동과 어떤 부분에서 다른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지? 변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고 과거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무엇이든 나쁘다는 황당한 가치관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모르겠다. 교장선생님께서 교사 연수 때 '당신도 누군가의 개새끼다.' 라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관계에 신경쓰며 조심해서 살아가야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더라. 이걸 인지하지 않으면 진짜 개새끼가 된다..
버려진 것들에서 고통과 더불어 매혹을 느낀다. 시선, 손길, 발걸음이 닿지 않은 곳, 그리고 침묵하는 것들에 신경이 쓰인다. 쓸모없고 때 묻고 낡은 것들에 취향이 있다. 빛바래고 망가져 방치된 사물이 지극히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자 풍부한 역사를 간직한 문명의 증거로 보이는 때가 있다. 의미가 희박한 일상의 말들이 시만큼 낯설고 신비하게 들리는 순간이 있다. 어떤 독자도 밑줄 치지 않았을 문장들과 동그라미 치지 않았을 단어들이 그것이 담긴 책 한 권의 무게를 온전히 지탱하는 굽처럼 읽히기도 한다. 내가 그것들에서 감지한 리듬과 그것들이 내게 드러내는 그늘을 신뢰하며, 그것들에 관해 타인들이 먼저 발화한 소량의 말을 참조하면서, 왜 아름다운지 왜 떨리는지 아직은 알 수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까닭을 밝혀내는 ..
흘러가는 시간으로부터 힘을 얻는 망각은 사건의 원형을 이지러지게 하며 이윽고 새로운 형태로 조합하여 자리잡게 만든다. 그보다 훨씬 거대한 망각의 찌꺼기에 불과한 기억은 때때로 (혹은 상시) 무기력할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발생했을 당시에 해결하고 그 모든 결과를 가장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수단으로 남겨야한다. 이것이 어떤 일이 발생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왜곡으로부터 사건의 원형을 유지하기 위해 당사자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해방 이후의 우리 역사는 시작부터 실패했고 이제는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조차 모호하게 되어버렸다. 잊히길 바랬던 일의 주체들은 망각으로 부터 힘을 얻었고 기억하길 바랬던 지사들은 망각으로 인해 정당성을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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