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라디오 클래식 프로그램 진행자인 바리톤 정경이 만든 노래가 있다. 11시 클래식,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과 같은 제목이다. 아침에 EBS 영어 방송을 듣다보면 중간 광고에 노래의 일부가 나오는데 그 부분이 너무 좋아 애써 찾아 듣게 됐다. 노래 가사 전체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바치는 세레나데 같지만 정경이라는 사람의 삶이 그리 평탄치 않았기에 그것을 이겨내고 지금에 이른 자신의 지난 날을 회고 하는 듯한 중의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
노래의 핵심 가사인 이 부분은 르누아르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질곡이 많았던 인생이었지만 삶을 긍정하고 아름다움을 남기려했던 그의 마음이 읽힌다. 때로는 잔물결이 때로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넘어 평온의 항구에 도달한 항해사들의 그것과 같은 마음, 나도 그런 잔잔하지만 단단한 삶의 자세를 갖고 싶다. 이 노래를 듣다보면 자연스레 드라마의 마지막회가 떠오른다.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마무리되는. 정신이 나약해 정의가 불의를 이기고, 악이 횡행하는 고구마 같은 상황을 (비록 그것이 가상극에 불과하다해도) 견디지 못하는 나는 아무리 재밌는 드라마라도 중간은 거의 보지 않고 마지막 회만 보곤 한다. 어찌되었든 사랑이 이어지고 불의는 사라지며 모두가 행복해지는 대단원의 종막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부정적인 세상에 절여진 뇌와 투덜거리는 입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드라마의 마지막 처럼 내 인생도, 나의 대한민국도 모든 것이 바른 곳으로 돌아가 꼬인 것 없이 평온한 상태가 되었으면 좋겠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우리의 인생은 계속되지만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만 남기를. 이런 희망이 고통을 견뎌내는 힘이 되어 주기를. 오늘도 11시 클래식을 들으며 아름다운 망상에 빠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