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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진 것들에서 고통과 더불어 매혹을 느낀다. 시선, 손길, 발걸음이 닿지 않은 곳, 그리고 침묵하는 것들에 신경이 쓰인다. 쓸모없고 때 묻고 낡은 것들에 취향이 있다. 빛바래고 망가져 방치된 사물이 지극히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자 풍부한 역사를 간직한 문명의 증거로 보이는 때가 있다. 의미가 희박한 일상의 말들이 시만큼 낯설고 신비하게 들리는 순간이 있다. 어떤 독자도 밑줄 치지 않았을 문장들과 동그라미 치지 않았을 단어들이 그것이 담긴 책 한 권의 무게를 온전히 지탱하는 굽처럼 읽히기도 한다. 내가 그것들에서 감지한 리듬과 그것들이 내게 드러내는 그늘을 신뢰하며, 그것들에 관해 타인들이 먼저 발화한 소량의 말을 참조하면서, 왜 아름다운지 왜 떨리는지 아직은 알 수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까닭을 밝혀내는 데 골몰한다. 그것들에 이끌려 외따로 떠도는 것이다. 유혹은 길을 벗어나게 한다. 필연적으로 나는 잘못을 저지른다. 결코 뉘우치고 싶지 않은, 어떤 치명적 결과가 야기되든 기꺼이 떠맡을, 해석과 행위의 오류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읽는 일에 있어서나 사는 일에 있어서나 기꺼운 잘못이다. 

 문제는 혼자 아끼고 마음 썼던 것들을 세상에 들고 나올 때 생겨난다. 내가 찾아 닦아낸 귀한 보물이 네 눈에는 싸구려 애물단지라면. 몇 번을 풀어도 또 풀어낼 비밀이 맺힌 시와 이미지가 네게는 난방기에 낀 거미줄이나 양탄자의 마른 포조두 얼룩에 불과하다면. 관자놀이부터 발꿈치까지 트레몰로가 관통하는 관능의 서사가 네게는 달팽이의 생식법보다 더 감흥이 없다면. 나는 은합에 가장 붉은 심장을 도려내 주려는데 너는.... 차마. 어떠나. 내 선물을 받아주겠니. 쓰레기라 비웃을 거니. 나는 두렵다. 나는 글을 쓸 수가 없다. 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윤경희. 분더카머

 

 

 

 

나라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내 취향을, 내게는 너무 소중한 것들을 내가 전해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쩌지.'

 

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할 것을 이렇게나 아름다운 두 문단으로 만들어낸 그 능력에 반하고 부러워할 수 밖에 없다. 그 사람의 넓은 세계를, 그만큼이나 다양하게 존재할 상상의 형태와 그것을 현실 속에 구축해낼 어휘를. 황폐하고 좁은 우물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