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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ary thought/As coinlover

게이샤

coinlover 2023. 3. 26. 15:25

 

1.

 

게이샤를 마셨다.

 

요몇년간 가장 핫하고 비싸다는 원두.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취향과는 엄청 멀었다. 

 

이렇게 기록을 해두는 건 시간이 지난 뒤에 내 평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지표를 남겨두기 위해서다. 

 

산미가 두드러졌고 다양한 풍미가 섞여 있다는건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들이 내게는 그리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단 하나의 맛이라도, 단 하나의 향이라도 내게 맞는 것이 중요하지 맞지 않는 것이 수없이 펼쳐진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커피 초보에 불과한 내가

 

아직 감당하지 못할 만한 깊이의 커피를 만나 그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테다. 

 

 

 

 

2.

 

사람들이 커피나 위스키, 와인 등에 빠져드는 이유는 그것들의 맛과 향이 가지는 모호함에 있다.

 

정답이 정해진 직설적인 맛이 아니라 숨겨진 맛과 의미를 하나 하나 찾아가는데서 묘한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현대사진, 현대미술에 빠져

 

스스로 그것을 추구하거나 컬렉션하는 사람들의 마음과도 어느 정도 통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핵심 가치는 모호함이다. 모두들 그것을 좋아한다.

 

정답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맥심모카골드처럼 직설적으로 달고 맛있는 인스턴트커피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삶에서, 글에서, 그림에서, 사진에서 단도직입을 추구했고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함을 견디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좀 달라져야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직설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나 또한 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모호함을 둘러써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