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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인왕을 시작으로 소위 소울라이크(소울류)라고 불리는 게임에 입문했다.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한다는 다크소울과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게임들을 묶는 단어 소울라이크.

처음 인왕을 구입했을때 튜토리얼 보스를 못잡아서 며칠동안 헤매다

대체 이걸 왜 구입한걸까 하는 후회를 미친듯이 했는데 별별 수를 다써서 어떻게든 잡고 보니 할만해지기 시작했다.

보스 하나 마다 몇십번의 트라이를 하다보니 발컨 중의 발컨인 나도 손에 익은 몇개의 플레이 방법을 갖게 됐고

그것에 의존해 파해법을 찾으며 대망의 엔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인왕을 끝낸 뒤에 기존에 즐기던 순한 맛의 J-RPG를 해봤는데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가 없어 중도 포기해버리고 소울류의 본가인 다크소울3을 시작했다.

인왕과는 비슷한 듯 다른 게임성과 난이도에 경악을 하면서도

환불의 심판자 군다를 넘어 정말 늪에 빠진 듯 허우적 거리며 플레이를 해나갔고

그뒤 다크소울 1, 다크소울2, 인왕2에 이어 무서워서 쳐다도 못봤던 블러드본까지

대부분의 소울류를 섭렵하며 매운맛 게임에 빠져들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게임들에 적응을 해나가면서도 도저히 못해낼 것 같은 금단의 영역이 하나 있었는데

다크소울 제작사인 프롬소프트에서 작년에 출시했던 닌자 액션 게임 세키로,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였다.

유튜브나 게임전문 사이트에서 조금씩 접했던 게임 플레이 영상은

나같은 똥손이 도전할 수 없는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주입식 교육으로 알려주는 것 같았다.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보스의 공격들을 놀라운 타이밍으로 패링해내며

틈을 찾아내 반격을 찔러넣는 플레이 모습은

소울류 게임을 하면서도 패링 성공은 거의 못해봤던 내게 외계인들이나 해야할 게임처럼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내가 소울류 게임이 아니면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는 것.

할 게임이 없어 전전긍긍하다 결국 맛이나 한번 봐야지 하는 심정으로 세키로의 세계에 발을 담게 되었다.

점프로 이동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어 길찾기가 어렵지 않았던 다른 소울류와 달리

와이어를 이용한 점프로 이곳 저곳 정신없이 날아다녀야했던 새키로는

보스 공략의 어려움에 더해 길찾기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공략의 도움없이는 깰 수 없는 상황이었고

국내 1,2위를 다투는 소울류 스트리머 김즈타와 이클리피아의 모범 답안에 힘입어 한발 한발 전진해 나갔다.

그동안 소울류 게임을 하며 피지컬이 약간이나마 성장했던 것인지

몇몇 보스는 원트에 클리어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으나

다른 이들이 쉽게 넘기는 보스들에서 의외로 고전을 면치 못하기도 했고

고수들의 보스 파해법은 내 컨트롤 능력으로 따라하는게 불가능해

수십번의 트라이 끝에 나만의 공략 방법을 만들어 뚫고 나갈 수 밖에 없었다.

7월 30일에 구입해서 하루에 한시간 내지 두시간씩 운동하면서 플레이한 결과

9월 29일 저녁에야 드디어 엔딩에 도달할 수 있었다.

최종 보스 아시나 잇신의 경우 겐이치로까지 포함하면 무려 4페이즈까지 상대를 해야 하는데

3페이즈에서 30번이 넘는 좌절을 맛보고 패드를 던질번 했으나

조금씩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고 익숙해진 오의 조작법 하나에 의존해 무너트릴 수 있었다.

마지막 인살 마크가 뜨는 순간의 그 쾌감이란 정말 형언할 수 없는 수준.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하더라.

노오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양사언의 이 유명한 시조는 소울류 게임을 맞이하는 이가 가져야할 자세를 보여준다. 

인생에서 중요한건 타이밍, 그리고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 끈기와 열정이라는걸

별 것 아닌 게임 플레이를 통해 느낀다.

누군가는 그토록 하찮게 보고 경멸할 게임 속에는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많은 인생의 경구가 숨어 있으리라.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았던 게임을 마무리하고 나니 인생의 큰 벽을 하나 넘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한번 클리어한 게임을 여러 회차 반복해서 하지는 않는 스타일이라

새키로를 끝낸 지금은 오늘부터 대체 뭘해야할까 하는 걱정이 더 크다.

결국 나도 다른 소울류 중독자들처럼 언제 나올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엘든링의 소식에 매달려야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