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얘기 안들리는 곳으로 도망가다 보니 종착역이 라디오다. 물론 시사이야기 같은 거 전혀 나오지 않는 음악 중심 채널만 틀어놓는다. 돌아보면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웠을 시기에 별이 빛나는 밤에, FM데이트, 음악도시 같은 프로그램을 들었는데 그때도 정치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른채 나를 둘러싼 가까운 일상의 일들에만 감정을 소모하며 살았다. 내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갖고 괴로워하기 시작했던 건 언제부터 였을까? 라디오를 듣지 않게 된 대학생 때부터 였던 것 같다. 역사를 공부하고, 수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매체를 접하고 몰랐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내 세상은 넓어졌지만 그만큼 괴로움도 커져갔다. 민의가 왜곡되고 정의가 무너지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마치 우리 가족의 문제인 것처럼 느껴졌고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한때 세상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믿었다. 정의는 승리할 것이며 사필귀정이라는 사자성어는 변치않는 진리라고 숭앙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순진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세상은 선악의 이분법으로 구분되지 않으며 악함의 층위는 생각보다 더 다양하며 두껍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비상식이 상식을 이길 수도 있으며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지도 않는다. 수십년, 혹은 수백년 단위의 시간이 지났을 때를 관조해보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악과 혼란으로 점철되는 듯한 세상, 스스로를 파괴하며 남까지 깊은 수렁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야하는 찰나의 이 세상이 버겁게만 느껴진다. 이제야 극도의 긍정성을 가진 사람들만이 혁명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하게 됐다. 냉철하고 비판적인 시각만을 가진 사람은 본질을 꿰뚫어볼 수는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의 지속을 버텨낼 수 없는 것이다. 수년간 한국의 정치판을 바라보며 염증에 시달리게 된 나는 잠시 그것을 몰랐던 시절로 도피하고 있다. 라디오를 들으며 나를 둘러싼 작은 세상만을 바라봤던 그때. 그 일상을 힘들게 만드는 구조적 모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그저 나를 바라보며 노력으로 모든 것을 헤쳐나갈 수 있을거라 믿었던 그 때로. 잠시 눈을 감고 꿈을 꾸려 한다.
Fragmentary thought/As coinlo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