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승부와 슬램덩크에 열광했던 중학교 시절,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공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챙겨봤던 스포츠 중계가 농구, 그 중에서도 현주엽이 있었던 고려대의 경기였다.
중,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내며 최고의 콤비네이션을 보여줬던
서장훈과 운명적 라이벌이 되어 승부를 겨루는 모습은 스포츠 만화의 한페이지 같이 멋져보였고
연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고려대의 주역인 그를 더더욱 응원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지도 강백호랑 비슷한데다 고려대 유니폼도 붉은색이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1990년대 중후반, 외국인 용병들이 한국 농구판에 들어오면서 이상하게 재미가 없어져
농구에 대한 관심을 끊게 됐고 자연히 그에 대한 관심도 식어 버렸다.
20여년이 지난 어느날 원나잇푸드트립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신들린 먹방을 보여준 그를 보며 이미지가 많이 변했구나 싶어 깜짝 놀랐다.
부상으로 인한 조기 은퇴, 사기인한 사업 실패, 음주운전, 이혼 루머 등을 겪으면서
말수가 적고 시크해보였던 그는 체중이 엄청 불어난 동네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먹을 때의 그는 진심으로 행복해보였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종횡무진했다.
남들은 욕하는 꼰대같은 대학 선배형의 컨셉이 재밌어서
시간이 날때마다 유튜브에서 그의 영상클립들을 모아보고 있다.
몇년간 먹방 대세가 이어지면서 수많은 기인들이 등장했지만
힘겹게 먹는걸 보며 저러다 죽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되서 불안했다.
하지만 현주엽은 진짜 끝을 알수 없는 구멍에다 음식을 때려 넣는듯
아무 무리가 없는 모습이라 보면서도 마음이 편했다.
특히 그의 소고기 먹방은 정말 먹방계에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엄청났다.
1Kg은 에피타이저인양 가볍게 클리어해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소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참을 수 없을 정도다.
이날도 유튜브 채널 먹보스 쭈엽이를 보며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탑마트로 달려갔고
마침 수목돌풍이 불고 있던 날이라 1+ 등급의 소고기를 반갑에 구매할 수 있었다.
통영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소고기를 득템할 수 있는 곳인 탑마트.
수목돌풍이 더해진다면 소고기 가격도 그리 무섭지 않다.
숯불에 구우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일개 가정집에서 그건 무리이므로 자이글에 굽는걸로 만족했다.
현주엽의 먹방에 감동받은자의 소고기 등심 한입.
크게 잘라 입안 가득 넣고 먹으니 풍미와 식감이 압도적이었다.
원래 소고기랑 위스키 같이 안마셨는데 현주엽이 떡갈비랑 같이 먹는걸 보고 참을 수가 없어 한잔.
소고기 흡입 후 달달한 디저트는 국룰.
마카롱이 베스트인데 배달이 되지 않아
딸기생크림케이크와 녹차테린느로 마무리.
정말 먹방으로 하얗게 불태운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