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같이 내렸던 지난주 어느 날,
점심으로 돈가스를 먹으려했는데 문을 닫아서
차선책으로 충무칼국수를 갔더니 거기도 재료 소진으로 영업 종료.
빗속에서 방황하다가 갑자기 서울삼겹살이 생각났다.
비오는 날에는 대패삼겹살이 간절해질 때가 있는데
대학교 신입생 시절 학부 선배들과 축구 한게임을 뛰고
들렀던 경대 후문의 우리엄마식당에서 먹었던 그 맛이 그리워져서다.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해 들어간 식당에서 동기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없는 돈을 모아 사먹었던 금쪽같은 대패 삼겹살과 소주 한잔.
동기인 지원이가 대패 삼겹살 위로 소주를 붓던 모습이
어제일처럼 선명하게 기억난다.
서울삼겹살 또한 내가 즐겨가던 우리엄마식당 같은 노포다.
내부가 깔끔하다는 느낌도 없고 자리에는 기름이 번들 거리는 느낌도 있지만
평소에는 꺼려지는 이런 분위기가 비오는 날에는 오히려 더 좋게 느껴진다.
메뉴는 고민할 것도 없이 대패 삼겹살.
예전에는 알루미늄을 깔고 구워먹었다는데 이제는 종이 호일이 나온다.
열을 맞춰 삼겹살을 올리고 익기를 기다리며 밑반찬을 주섬주섬 주워먹어본다.
맛이 꽤 좋다. 솜씨있는 집이라는 느낌이 밑반찬에서부터 스며 나온다.
비내리는 소리와 부침개 굽는 소리가 비슷하다고 하지만
나는 삼겹살 굽는 소리가 더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문밖으로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잘 익은 한점을 깻잎에 싸서 먹으니
더할나위 없는 행복감이 입안으로 퍼져나갔다.
이런 분위기에는 소주를 한잔 해야하는데
낮부터 취할수는 없어서 사이다로 대신했다.
뭘 마시든 중요한건 분위기. 이것이 사이다인지 소주인지를 따질 필요는 없는 순간이었다.
마무리는 볶음밥이다.
예전에는 고기 먹고 밥볶는거 싫어했는데 요즘은 안먹으면 섭섭한 기분이 든다.
이집 볶음밥 또한 맛이 꽤 좋다. 고기는 다먹지 말고 몇점 남겨둘 것.
밥 볶을때 가위로 썰어넣어 주시는데 그게 별미더라.
저녁에는 또 모임이 생겨서 라무진에서 한잔.
오랜만에 양고기 먹으면 대단히 맛있을 줄 알았는데 으외로 별 감흥이 안생기더라.
점심때 서울삼겹살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 그런 것인지.
그래도 소주에 말아 먹었던 하얼빈 맥주는 정말 맛있었다.
이 맥주를 평소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이날이 역대급이었던 듯.
아침을 거르고 육식으로 시작해 육식으로 끝났던 하루.
빗속에서 나눴던 많은 대화들과 속까지 시원했던 맥주 한잔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