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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정통한 수준은 아니지만 못 먹을만한 것은 만들어내지 않을 정도의 소양은 갖추고 있다.

 

특히 김밥과 카레에는 일가견을 갖추고 있어 자주 만드는 편인데

 

할 때마다 평균 이상의 맛을 뽑아내지만

 

가끔 이게 내가 만든 것이 맞는가 싶을 정도의 마스터피스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어제 만들었던 소고기 카레도 그런 케이스.

 

똑같은 재료에 똑같은 방법으로 만들었는데

 

오뚜기 백세카레의 풍미를 넘어선 유명한 일본 노포에서 먹는 듯한 깊은 맛의 카레가 나와버렸다.

 

이 카레가 내게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이유 중 하나는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여름 역사교육과 엠티 당시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고 겨우 일어나서 후배들 밥 챙겨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열악한 조리기구로 만들었던 그 카레의 맛과 유사한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그때 만들었던 카레는 최악의 환경에서 만들어낸 말도 안 되는 극상 퀄리티였기에

 

후배들로부터 마법 카레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18년간 재현해내지 못하고 나 스스로도 추억으로만 생각했던 그 맛을

 

어제 우연히 만들어냈던 것이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요리를 만들 때 재료를 볶거나 삶아내는 시간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져 버리는 것을 알기에

 

이상적인 시간을 재서 규격화해볼까 싶은 생각을 하다가도

 

내가 요리사 될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하는 귀차니즘에 져서 한 번도 성공을 못했다.

 

한결같이 만들어지는 맛이 아니기에 이렇게 놀라운 맛이 나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도

 

나름 삶의 즐거움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나의 게으름을 합리화해본다.

 

그러고보면 나는 모든 분야에서 계량화 및 정리를 통해

 

똑같은 퀄리티의 결과물 만들어내는 일을 잘 해내지 못하는 것 같다.

 

그저 순간 순간을 즐겁게 살아갈 뿐, 프로 정신은 부족한 아마추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이런 성향이 부끄럽거나 안타깝지 않다.

 

가끔 프로마저 능가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아마추어라니 얼마나 멋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