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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의 휴거설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면 모두 기억할 것이다. 

 

골목 곳곳에 뿌려지던 묘한 그림이 그려져 있던 전단지들. 

 

짐승의 수 666의 징표인 바코드를 받으면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다며 

 

목청 높여 전도 하던 사람들. 

 

우리 집에서 진주남중학교 가는 길의 건물 지하에

 

휴거를 주장하던 다미선교회 지부가 있었고

 

나는 그 앞을 지날때마다 착하게 살아야지 하며 나를 돌아봤다.

 

물론 그 결심은 학교 가면 사라져 버릴 정도로 소소한 것이었지만.  

 

휴거가 다가오던 그날까지 착한 삶을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고

 

또 금방 잊어버리는 날들이 쌓여 어느새 휴거로 설정된 그날이 다가왔다.

 

나는 너무 슬픈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며 불성실했던 지난 날을 안타까워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다.

 

TV뉴스에서는 길가에 남은 누군가의 신발을 보여주며

 

휴거가 일어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은 한 신자가 퍼포먼스를 한것같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 뒤의 내 삶을 옥죄여왔던 것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론이었다.

 

1999년의 종말이 오기 전에 착한 삶을 살아

 

꼭 천국에 가야지 하는 휴거 Ver. 2.0의 다짐을 매일같이 하고 또 매일같이 잊어버리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1997년 수능을 보기 전에 나왔던 탐구영역 전문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의 적중하지 못한 예상문제처럼

 

종말의 그날은 어이없이 지나가 버렸고, 어느새 원더키디가 우주로 나갔던 그 해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어떤 날을 설정하고 그 날을 위해 최선의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나이를 먹고는 천국에 가기 위한 다짐보다는 현실적 성취를 위한 노력을 하기 위해 

 

게으르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으로 방향성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항상 결전의 그날이 오기 전까지 놀다가 아무것도 해놓지 못한 후회를 하고 있다. 

 

이번 고사원안은 하루에 한문제씩 성실하게 출제해서 

 

마지막에 허둥지둥하지 말아야지 했던 다짐이라던가 

 

올해는 연말이 마감인 공모전을 미리 준비해서 마무리 되지 않은 시리즈를 제출하지는 않겠다는 계획은

 

언제나 수포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그날이 언제인지 모르니 항상 깨어있으라는 마태복음의 말씀과는 달리

 

항상 잠을 자다가 가끔 눈을 부비고 일어나 그날이 오늘은 아닐까 하며 두려워하는 삶을 사는 나,

 

요원한 성취를 희구하면서 발걸음은 더디게만 내딛는 나,

 

언제쯤 진정한 깨달음을 얻어 나에게 주어진 나날들을 굳건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하루가 모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모여 세월이 된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하면서

 

그 말에 책임을 지지 못하고 살고있는 나의 오늘 하루가 참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