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구치 지로 유작 특별 세일할 때 사놓고 몇달에 걸쳐 조금씩 읽다가 시험기간이라 여유가 좀 있어 침대에 누워 완독했다.
메이지의 격변기를 살아갔던 일본 문인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동시대 일본의 상황을 담담하게 잘 풀어낸 수작이다.
다니구치 지로의 그림은 격정적인 감정 표현에는 어울리지 않는 잔잔한 산문같은 느낌이라 대하 드라마 같은 내용에 어울릴까 싶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듯 얘기해버리는 그 특유의 연출과 그림이 이런 장르에도 잘 맞다는걸 처음 알게 되었다.
역시나 한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의 구력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명작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재확인했다.
다섯권으로 이뤄진 이 책은 한권 한권 읽어내는게 거의 소설책을 읽는 듯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메이지 시기의 일본 역사에 대해 그리 밝지 못하고 등장하는 문인들의 일부 밖에 모르기에
(일부라고 하기도 민망하게 사실 나츠메 소세키 외에는 다 낯설었다. 우리나라 근대기의 문인들도 잘 모르는데 옆나라의 역사야 오죽할까.
역사 공부하는 사람으로써 참 부끄러운 일이다.)
생경한 사건이나 이름이 등장하면 찾아보고 다시 읽다 보니 다 읽어내는데 몇달이 걸린 것도 당연한 일.
단순히 재미를 생각하고 볼만한 만화는 아니니 보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문호 개방 이후 서구화에 대해 당대 지식인들이 느꼈던 혼란
제국주의, 전체주의 국가를 향해 폭주를 시작했던 무렵의 일본의 내부 갈등 등이 주요한 맥락을 이루고 있고
안중근 의사의 의거라던가 한일 강제 병합 등우리나라와도 깊은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깊이 다뤄지지는 않는다.
이런 부분에서는 오히려 왕도의 개라든가 무지개빛 트로츠키를 그린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관점이 직접적이어서 좋았던 것 같다.
이 만화를 읽으며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우리나라 문인들의 삶을 이와 유사한 방식의 만화로 그리고 싶어졌다.
혼란스러우면서도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당신들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단편적인 사건들로만 배웠던 그 시대를 일상의 모습을 통해 재구축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이를 통해 도련님의 시대라는 이 책이 가진 불완전성을 보충해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 한국에서는 성공하지 못할 기획.
이런 만화를 출판해낼 수 있는 일본의 문화계의 역량이 못내 부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