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더카머2 윤경희, 분더카머 버려진 것들에서 고통과 더불어 매혹을 느낀다. 시선, 손길, 발걸음이 닿지 않은 곳, 그리고 침묵하는 것들에 신경이 쓰인다. 쓸모없고 때 묻고 낡은 것들에 취향이 있다. 빛바래고 망가져 방치된 사물이 지극히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자 풍부한 역사를 간직한 문명의 증거로 보이는 때가 있다. 의미가 희박한 일상의 말들이 시만큼 낯설고 신비하게 들리는 순간이 있다. 어떤 독자도 밑줄 치지 않았을 문장들과 동그라미 치지 않았을 단어들이 그것이 담긴 책 한 권의 무게를 온전히 지탱하는 굽처럼 읽히기도 한다. 내가 그것들에서 감지한 리듬과 그것들이 내게 드러내는 그늘을 신뢰하며, 그것들에 관해 타인들이 먼저 발화한 소량의 말을 참조하면서, 왜 아름다운지 왜 떨리는지 아직은 알 수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까닭을 밝혀내는 .. 2023. 3. 21. 앤 카슨 녹스(Nox) - 윤경희의 분더카머와 닮은 책 올해 읽은 책중 딱 한권만 남기라면 망설임 없이 윤경희의 분더카머를 선택하겠다. 파편화된 기억의 조각들, 여러 가지 색으로 빛나는 그 유리 파편들을 섬세하게 엮어 원래 형태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가진 스테인드글라스로 완성한 듯한 책이었다. 앤 카슨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오빠의 죽음을 추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 책에 대해서도 아예 몰랐다. 하지만 이 책의 옮긴이가 윤경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입했다. 그가 강의하고 있다는 대학에 찾아가 청강을 해보고 싶을 정도로 나는 그의 글에 매료되었고 그가 옮기기로 한 책이라면 분명 내 맘에도 들 거라고 생각했다. 이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연결되지 않을 이미지와 글이, 홈과 모양이 맞지 않는 조각이 끼워진 듯 부자연스러운 흐름이 위태롭게 이어지다 어느새.. 2022. 11. 1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