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고의 지름
올해 최고의 지름은 단연 A1.
내 재정 상태에서는 황송하기 그지 없는 카메라. 더말할 필요가 없는 올라운드형 카메라의 제왕이다.
한가지 촬영분야에서 이 카메라보다 더 좋고 특화된 것들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모든 영역을 커버해야하는 사진가에게는 이보다 더 적합한 카메라는 없다.
무엇보다 현존하는 카메라들 중에서 가장 완벽한 전자셔터는 정말 매력적이다.
파버카스텔 그라폰 퍼남부코 만년필.
몽블랑 따윈 모른다. 내게 최고의 문구류는 파버카스텔. 내게 최고의 만년필은 그라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가장 비싼 만년필.
구입하고 보니 이 보더 더 내게 맞는 디바이스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갤럭시 폴드4. 핸드폰과 타블렛의 중간점을 잘 잡아서 단점보다 장점을 느끼는 경우가 훨씬 많았던 이상적인 기구.
최고의 피규어는 CCS토이즈의 라젠간. 중국의 피규어 제작 수준이 이정도였나 감탄할 정도의 퀄리티. 명품 피규어라는 표현이 모자라지 않을 정도였다. 가동성과 프로포션, 조형미 어느 하나 놓친게 없는 퍼펙트한 제품.
2. 최고의 음식
내가 제일 선호하는 음식은 장어덮밥. 그 중에서도 부산 광안리의 동경밥상은 정말 끝판왕이다. 김엄마님께서 혼을 담아 만들어주시는 장어덮밥은 꼭 한번 드셔보시길 권한다.
장어덮밥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카이센동. 여러 군데서 먹어봤지만 해목의 그것이 비주얼도 맛도 가장 좋았다. 이 집 장어덮밥도 무척이나 좋지만 김엄마님께 밀려서 빠졌다.
얼마전에 갔다가 실망해서 뺄까 고민도 했지만 올해 초 3년만에 맛봤던 대도식당의 오리지널컷 등심은 너무 임팩트가 강했기에 최고로 선정할 수 밖에 없었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만족할 수 밖에 없는 고기 퀄리티. 쌀밥에 등심 한점은 진리다.
최고의 커피는 남포동 라임스케일의 느와르. 호불호가 전혀 없을 듯한 맛과 비주얼. 카페가 너무 좁아 힘들긴 했지만.
최고의 맥주는 OBC 문라이트. 배럴에이지드 맥주를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 맥주는 진짜 맛있다. 과하게 묵직하지도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은 딱 좋을 적도의 무게감과 풍미. OBC 맥주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겠다.
최고의 위스키는 야마자키 12. 가격이 왜그렇게 오르는지, 품귀현상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 마셔보면 알 수 있다. 미각이 친일파인 나는 위스키 취향마저도....
3. 최고의 사진
별 대단한 사진을 찍지는 못했던 올해.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는 개인 작업을 제외하고 공개할 수 있는 사진 중에 가장 맘에 드는 건 역시 이 한장. 이상적인 구도, 이상적인 노출의 정석이라고 자부할만 한 사진이었다.
4. 최고의 순간
3년만에 맡은 담임. 적응이 안되서 힘들기도 했지만 스승의 날이라고 캐리커처 들어간 케이크 선물을 받았을 때는 좀 많이 찡했다.
여름방학 첫날 집 근처에 있는 카페 바운드리에 첫 손님으로 들러 브런치를 먹었던 순간. 올해 가장 마음 편하고 여유로웠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5. 최고의 책
윤경희의 분더카머인데 사진을 찍어 놓은게 없어 윤경희씨가 옮긴 책 녹스 사진으로 대체. 분더카머는 몇번에 걸쳐 읽어도 새로운 느낌이 묻어난다.
6. 최고의 고양이
최고의 고양이는 통영시립도서관의 프로길냥이 시도냥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통영 무전동의 마스코트다.
7. 최고의 여행 스팟
늦 여름, 남해 여행하다 더워 죽을뻔 했는데 우연히 들린 초록스토어에서 유자에이드 먹고 살아났다. 그래서 올해 최고의 여행스팟으로 정했다. 이곳은 내부 인테리어도 팔고있는 굿즈들도 다 취향저격.
아모레퍼시픽 뮤지엄에서 관람한 안드레아 거스키전. 거스키의 사진을 대형 인화로 본 순간 느낀 감정은 정말 복잡 미묘했다. 내가 추구하는 사진의 끝판왕을 만나버린 듯한 느낌. 좌절감과 희망, 기쁨과 슬픔 등 만감이 교차했던 전시였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아모레퍼시픽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었던 것 같다.
8. 최고의 게임
올해 최고의 게임은 단연코 엘든링. 서사보다 게임성 자체에 집중한 것이 좋았다. 프롬소프트에서 만들어왔던 다크소울 시리즈의 모든 노하루가 집약되어 탄생한 최고의 결과물. 오픈월드 다크소울이라고 할만큼 전작들과 유사한 점이 많지만 그래서 좋았다. 숨겨진 이야기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는 것도 재밌었고. 몇달전에 클리어하고 요즘 다시 시작했는데 그때와는 다른 재미가 느껴진다.
최악의 게임은 호라이즌 포비든웨스트.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도 안되고 지루한 퀘스트들의 반복도 힘들고. 그래픽과 서사에 지나치게 집중해서 그런지 게임 자체의 재미는 별로였다. 그렇다고 서사가 대단히 독창적이거나 재밌지도 않았고. 게임 하는 내내 빨리 엔딩보고 내쳐야지 하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한해의 마지막 날. 아무 것도 안하기 뭐해서 대충대충 정리해본 올해의 베스트들.
사실 이것보다 더 좋았던게 많긴 하지만 떠오르는대로 정리하다 보니 이정도.
내년에는 더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