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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밖이 위험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듯한 영하의 날씨. 새벽 5시에 눈을 떴지만 몸을 일으킬 용기가 나지 않았다. 새벽 미사를 하루 쉴까 하는 유혹 속에서 몇십 분을 뒤척이다. 성당을 빼먹지 않는다고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빠졌을 때는 반드시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징크스를 기억해내고는 후다닥 준비를 마쳤다. 막상 밖으로 나가보니 생각보다 춥지는 않....은게 아니라 정말 울고 싶을 정도로 추웠다. 세병관 주차장 앞 공원에 걷기 운동을 하는 어르신들이 몇 분 계셨다. 이렇게 추운 날 아침 운동을 하는 게 과연 저분들의 건강에 이로울 것인지 고민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성당에 도착. 늘 같은 얼굴들(일요일 새벽 미사에 나오는 사람들은 항상 똑같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인지 인원이 좀 줄긴 했다. 영성체 시간이 평소보다 빨리 끝난 걸로 판단해보니.) 속에서 지난주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며 미사 시간을 보냈다. 집에 가려고 나서는데 성모상 위로 달이 떠있어서 애써 카메라를 꺼내 한 컷 찍고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차까지 뛰어갔다. 빨리 집에 가서 이불 안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하고 뒹굴거리다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라서 가족들 점심 차려 먹이고 일 좀 하려고 내 방에 들어오니 완전히 냉골이다(내 방 보일러 파이프 라인을 평상시에는 막아놓는다. 서민 가장의 눈물 나는 절약 정신.). 집안에서 가장 추운 곳이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한파가 매섭긴 한 모양이다. 다른 곳은 따뜻하니 내 방에만 보일러를 틀기는 좀 그래서 술로 체온을 높이기로 했다. 작년 승인이 형과 마셨던 킹조지 5세 병에 숙성해놓은 메이커스 마크를 한잔 따라와 홀짝 거리며 자판을 두드리자니 어릴 적 영화 같은 데서 본 가난한 예술가의 삶이 떠올라 뭔가 작업 능률이 좀 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가르치는 학생들이나 우리 집에 있는 애나 모두들 집중력이 너무 떨어져서 큰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일 몇 분 하다가 내려놓고 블로그에 글이나 끄적거리고 있는 나를 보니 그들과 내가 뭐가 다른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늘은 좀 길게 써봐야지 하는 맘으로 시작한 이 글 쓰기마저 갑자기 내일 아침에도 기온이 이렇다면 교통지도는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고민이 온 머리 속을 장악해버려 그만 둬야 할 것 같다. 벌벌 떨며 좌우를 살피고 있을 몇시간 후의 내 모습이 떠올라 더이상 단어를 조합해 낼 여유가 없다. 만사 미뤄두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야겠다. 내일 아침에 뺏길 체온만큼의 온기를 미리 비축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