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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by day

부다면옥, 블루보틀 부산 민락

by coinlover 2025. 5. 26.

 

와이프님하의 지령이 떨어졌다. 미쉐린 가이드 빕구르망에 선정된 평양냉면집, 부다면옥에 가고 싶단다. 날씨는 궂고 바람도 불어대는 날이었지만, 사랑은 늘 기상 악화에 강하니까. 나이를 먹어 그렁그렁거리는 차를 몰고 평냉의 세계로 달려갔다. 내 인생 첫 평양냉면은, 절친 서티라노가 데려가준 을밀대였다. 그러나 그때 나는 평냉의 심심함이 아니라 '심심을 가장한 밍밍함'만 느꼈고, “도대체 왜 이런 데를 데리고 왔냐”며 “촌사람이라고 무시하냐”고 핀잔을 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이후로 나는 평양냉면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방송에서 유명인들이 간증하듯 찬양해도 ‘저것들 또 시작이네’ 하는 마음으로 그 세계를 차갑게 외면했다. 솔직히 말하면,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이 괜히 잰 척하며 먹는 음식처럼 느껴졌고, 그깟 냉면 한 그릇에 ‘맛잘알’ 티 내는 게 좀 없어보였다. 지방, 특히 통영이나 진주 인근엔 평냉 맛집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다 보니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았던 탓도 있다. 그러던 중 자주 가는 해운대 시장에 감칠맛이 있는 평양냉면을 내놓으며 미쉐린 빕구르망에도 오른 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귀가 조금 솔깃했다. 서울보다는 부산 맛집을 더 믿는 나로선, 미쉐린 가이드 부산편이라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실제로 거기에 실린 안목, 동경식탁 같은 곳은 정말 괜찮은 곳이었으므로.) 오픈 시간보다 20분 정도 늦게 도착해 웨이팅을 걱정했지만, 5월답지 않게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추워 손님은 의외로 적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평냉 보통, 비냉 보통, 맛보기 수육을 주문. 먼저 나온 육수는 ‘후추 뿌려 드세요’ 했지만, 뿌리지 않은 쪽이 더 나았다.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본은 했다. 이윽고 수육이 나왔다. 가격 대비 조촐한 구성이었지만, 잡내 하나 없이 부드럽고 깔끔했다. 아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내심 기뻤다. 내 몫이 늘어났으므로. 그리고 드디어 본 메뉴인 냉면. 아들이 주문한 비냉은 한 젓가락 맛보는 데 그쳤지만, 매콤함과 감칠맛이 괜찮았다. 내가 시킨 물냉은 ‘심심한 듯 심심하지 않은 맛’. 평냉을 싫어했던 내가 느끼기에, 강하지 않은 메밀향과 육향이 조화롭게 녹아들어 있어 텅 빈 듯 채워진 의외의 풍요로움이 있었다.

면발은 순메밀이라 탄력이 거의 없었지만, 입안에서 기분 좋게 퍼지고 매끄럽게 끊어지는 식감이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매일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먹고 나서 속이 부대끼지도 않았다. 음식 자체도 만족스러웠지만, 테이블 간 간격이 넉넉해 쾌적하게 식사할 수 있었던 내부 구조,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 맛집 특유의 ‘무심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친절한 응대가 기억에 남는다. 정성스런 태도는 없는 맛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해운대 시장을 그렇게 자주 들락거렸으면서도 이런 보석 같은 가게가 있는 줄 몰랐던 나의 무신경함을 탓하게 됐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해운대 올 때마다 했던 ‘뭐 먹지’ 하는 고민을 한 번쯤 줄일 수 있었을 텐데.

 

 

5월 후반이라 집에서 나오면서 옷을 가볍게 입었는데 날씨는 3월 초 같았다. 너무 추워서 밖으로 돌아다닐 엄두가 안나 그냥 커피숖으로 직행. 부산 민락에 블루보틀이 생겼다길래 다녀왔다. 파란색 로고만으로도 힙해보였던 예전과 달리 블루보틀은 더이상 특별하지 않다. 커피맛을 이만큼 내는 곳은 한국에 널리고 널렸다. 인테리어 같은 부분에서 느껴지는 차별성도 크지 않다. 하지만 또 이렇게 무난하게 일정 수준 이상의 만족감을 주는 곳도 별로 없다. 감탄할 정도는 아니라도 실패할 확률은 거의 없는곳, 게다가 통영에는 블루보틀이 없기에 큰 동네 오면 그냥 괜히 한번 들러보게 된다. 차몰고 가지 않으면 안될 위치인데다 주차도 쉽지는 않아서(전용 타워주차장이 있지만 사람 몰리는 시간에는 지옥) 들어가는데 고생을 좀 많이 했다. 접근성은 정말 별로 였는데 카페 내부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참으로 좋았다. 이걸 위해 접근성을 포기했다는걸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았다. 커피가 아니라 풍경을 마시러 간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