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샤 커피가 유명해진 계기는 조금 황당한 일화에서 시작된다. 한 커피 심사위원이 이 커피를 마시고는, “컵 안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한마디가 불씨가 되어,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이후 다양한 나라와 농장에서 앞다투어 ‘게이샤’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되었고, 이제는 한국의 외곽 지역 카페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물론, 가격이 저렴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넘사벽’까지는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게이샤라고 다 같은 게이샤가 아니라는 것. 생산지, 재배 농장, 가공 방식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다. 물론, ‘게이샤’라는 이름 아래 공통된 품종 특유의 향미가 어렴풋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건 마셔보면, ‘이걸 정말 게이샤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경우도 많다. 나도 한때 ‘게이샤병’에 걸렸었다. 커피를 막 좋아하기 시작했던 시절, 소문난 곳들을 찾아다니며 여러 게이샤 커피를 마셔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감동이 없었다. “이게 그 유명한 게이샤야?” 하는 의문만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진주의 한 카페에서 결정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숙련된 바리스타가 내려준 파나마 ‘라 에스메랄다’ 농장의 게이샤를 마셔보았는데, 첫 모금에 놀라움이 밀려왔다. 그제야 이해가 됐다. 아, 이래서 다들 게이샤, 게이샤 하는구나. 결국 같은 품종이라도 누가 어떻게 재배하고, 어떤 방식으로 가공하며, 누가 어떻게 내리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커피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당신, 진짜 게이샤 마셔본 적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글쎄요, 아마도… 한 번쯤은.”
알라딘에서 구입한 ‘엘 소코로 게이샤’는 2023년 COE(Cup of Excellence)에서 1위를 차지한, 말 그대로 최상위 등급의 원두다. 내추럴 방식처럼 진한 농후함은 다소 부족할 수 있지만, 워시드 특유의 맑고 깨끗한 인상은 확실히 살아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향과 산미의 균형이다. 꽃향은 선명하게 감지되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산미 또한 자극적이기보다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기 자리를 지킨다. 이 커피는 한껏 목소리를 높이며 주장을 펴는 대신 밝고 화사하면서도 경박하지 않은 향미로 자신의 가치를 조용히 설득한다. 입 안에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감촉도 흥미롭다.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미끈한 질감이 혀를 스치고 지나간다. 강렬하지 않지만,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그런 맛이다.
커피 초보 시절(사실 지금도 그다지 다르진 않지만) 어느 날 한 카페에서 게이샤를 아이스로 주문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바리스타 사장님이 살짝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드시면 게이샤의 향미를 다 느끼기 어려우실 텐데요.” 순간 당황해서, 그냥 따뜻한 걸로 바꿔 주문했다. 나는 뭐든 차갑게 마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뜨거운 커피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그래도 그날은 사장님 말씀을 따라 따뜻하게 마셔봤고, 확실히 향은 조금 더 풍성하게 느껴지긴 했다. 그 경험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커피를 차게 내려 마신다. 시원한 게 좋다. 그게 익숙하다. 내 미각은 원래 그렇게 섬세하지 못하다. 아무리 비싼 커피를 마셔도, 고수들처럼 복잡한 향미를 세세하게 구분하긴 어렵다. 느낀다 해도 그걸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도 없다. 그래서 이제는 굳이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센서리하듯 진지하게 마시지 않는다. 이른 아침, 초사이어인처럼 부스스한 머리에 눈은 퉁퉁 부어 있고, 눈곱만 간신히 떼고 부엌으로 간다. 정확한 계량 따위는 생략한 채, 느슨하게 커피를 내린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100g에 2만 원이나 하는, 내 기준에선 꽤 비싼 이 원두를 이렇게 막 마셔도 되는 걸까?” 그런데 곧, 스스로 대답하게 된다. 뭐 어떤가. 내가 즐겁다면, 그걸로 충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