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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대표적인 식문화로 알려진 다찌. 

진주에는 실비, 마산에는 통술, 통영에는 다찌로 알려진 

술을 시키면 안주가 알아서 준비되어 나오는 일종의 코스 요리. 

진주 실비는 교방 음식에서 비롯되어 식재료 자체보다 음식 실력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고 

통영의 다찌는 바닷가라는 장점을 백프로 활용한 신선한 식재료가 특장점이다. 

마산의 통술의 경우는 둘의 중간점 정도로 알고 있다.

사람들은 통영하면 굴과 다찌를 제일 먼저 떠올리는데 

둘다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찾아오는 지인들이 이것들을 경험하길 바랄 때 꽤 난감해진다. 

굴의 식감과 맛은 나와 상극이고(어릴때 떡국에 들어간 굴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고민했던) 

다찌 또한 해산물 위주의 음식들이 주로 나오기에 비린맛에 민감한 나로서는 좋아할 수가 없다. 

그래도 통영에 와서 꽤 많은 다찌집을 돌아봤는데 

괜찮은 집이라고 추천을 받아간 곳도 나오는 음식의 수만 많았을 뿐 실제로 

맛있다고 느낄만한 경험을 해보지는 못했다. 

1인당 3만5천원에서 4만원 정도의 돈을 지불하고 해산물 샘플러를 받는 기분이 들어 

가성비가 좋다고는 절대 말 못할 것 같다.  

그래도 그중에 제일 괜찮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알쓸신잡에 등장하기 전의 벅수다찌다. 

허름한 노포의 느낌이었던 그 집에서 이갑철 작가님과 술을 마셨던 기억은 

내 인생에서 꽤 중요한 순위를 차지하는 추억 중의 하나였고 

그때 술이 얼큰하게 오른 상태에서도 음식이 참 괜찮게 나오는구나 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알쓸신잡에 나온 이후에는 워낙 유명세를 타서 예약하기도 힘들었고 

확장 이전을 해서 모던한 느낌의 식당으로 바껴버린지라 굳이 가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진주에서 넘어오시는 귀한 손님들에게 

노포가 아닌 깨끗한 식당에서 대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정말 오랜만에 찾아가긴 했지만

그곳은 이미 내가 알던 벅수다찌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식당의 모양새부터 음식까지 전부.  

 

리뉴얼된 벅수다찌의 인테리어는 인근 유명 카페 바이사이드의 사장님이 하신걸로 알고 있는데 

빈티지한 인더스트리얼 컨셉에서 그 카페의 느낌이 은연 중에 풍겨 나오며

예전 벅수다찌 시절에 있던 자개장 같은 소품을 가져다 놓은 것이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일반적으로 다찌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완전 딴판이다. 

파인 다이닝 식당에 가까운 느낌.  

예번 벅수다찌 시절부터 있었던 미인도가 눈길을 끈다. 

지금봐도 그림이 참 예쁘다. 

몇년전에 저 미인도를 배경으로 셀카도 찍었던 것 같은데 예전 사진 폴더를 한번 찾아봐야겠다.

운 좋게도 미인도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되어 술먹는 동안 실컷 구경했다. 

 

1인 4만원 술상. 5명이 앉았으니 술병도 5개. 

빨간색 혹은 파란색의 바께스(버킷)에 담겨 나오는게 제맛인데 좀 아쉬웠다. 

소맥은 다찌의 기본 옵션. 

하도 많이 말다보니 맥주 한병으로 다섯잔을 칼같이 나눠냈다. 

소주는 써서 싫고 한국 맥주는 뭔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이라 아쉬운데 

둘이 더해지면 어찌 이리 맛있어지는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마시는 소맥만큼  맛있는 술은 없는 것 같다. 

전복죽. 평범한 맛이다. 

양념게장.

갈치와 파김치.

단호박 조림. 예전에는 참 싫어했는데 요즘엔 이게 안나오면 아쉽더라. 

굴과 산낙지. 굴은 싫어해서 안먹었는데 갓 나오기 시작한 철이니 신선했을 듯. 

먹어본 지인들이 맛있다고 하더라. 

참미더덕과 전복. 

회무침. 

고노와다라고 부르는게 더 익숙한 해삼내장. 고급 식재료다. 

멍게.

뿔소라. 

호박전. 

모듬회. 방어 배꼽살이 매우 고소했다. 

촛대고동과 문어숙회. 

촛대고동은 정말 처음 들어봤다. 나느 

멍게비빔밥. 멍게향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는데 나는 그래서 좋았다 ㅋ

방어초밥. 맛이 없을 수 있겠는가? 

문어튀김. 술안주로 딱 좋더라. 

꽃게회. 벅수다찌의 시그니처 음식이라고 한다. 

장으로 숙성시킨게 아니라 신선한 꽃게를 바로 먹는거라고 하는데 

확실히 꽃게장보다는 좀 더 날 것의 느낌이 살아있었고 비린맛은 없었다. 

근데 뭐 그렇게 대단한 맛의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평범한 가리비찜. 

부새라는 생선. 나는 생선 종류에 따른 맛을 구분할 정도의 미각을 갖추지 못한 관계로 그냥 생선구이 느낌으로 먹었다. 

매운탕. 매운탕이 맵지 않다는건 다 아는 사실. 

적당히 기름지고 깔끔한 느낌이라 술안주로 좋았다. 

새우튀김과 고구마 튀김. 

뭔가 애매한 퀄리티. 일식집 느낌도 아니고 분식점 느낌도 아닌. 

고등어조림. 간간하고 살도 실해서 밥이 절로 생각나더라. 

 

다른 다찌들에 비해 음식이 정갈한 느낌이고 먹으면 대접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노포의 맛과 느낌은 전혀 없다. 

예전의 벅수다찌와는 완전히 다른 그냥 일식 해산물 요리 전문점과 비슷한 느낌이다.

다찌의 멋은 술을 마시다 보면 하나씩 추가되어 나오는 안주에 있다고 본다. 

공짜로 주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장의 인심이 느껴지는, 뭔가 숨겨놨다 내놓는 듯한 대접 받는 기분.

그래서 진득하니 오래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게 되고 넉넉한 기분으로 함께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이 많은 이들이 느꼈을 다찌의 매력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유명 맛집이 되어 버린 벅수다찌에는 그런 풍류가 없다. 

시작부터 밀려드는 음식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벅차다. 

마치 다음 손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드시고 가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고급진 분위기와 바꿔버린 벅수다찌의 멋을 어디서 다시 찾아야할지 모르겠다.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나오면서도 씁쓸한 끝맛이 느껴졌던 것은 

또하나의 추억이 사라져 버렸다는 아쉬움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