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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에 예약했던 아들 수술 때문에 광화문집회발 2차 팬데믹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서울행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다. 수술전 검진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부터 차를 몰아서 10시쯤 병원에 도착했는데 병원 선별진료소에서 나오는 강한 에어컨 바람때문에 재채기를 몇번한 아들을 보고 수술전 코로나 검사 접수하시는 분들이 유증상자로 분류하여 검사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였고 수술과에 문의한 결과 선별 진료소에서 그런 입장이라면 수술을 연기할 수 밖에 없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들었다. 통영에서 서울까지 거리도 거리지만 의사들 파업도 예정되어 있는지라 이번에 수술을 받지 못하면 언제까지 밀릴지도 예상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들어갈 때 재채기 몇번 한 뒤 2시간여를 대기하는 동안 기침 한번 하지 않았고 병원 입구에서 열을 재봤지만 35.8도라는 정상체온이었는데 검사가 거부되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더욱 황당한건 코로나가 의심되면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해줘야하는게 상식적인 진행과정인 것 같은데 통영에서 왔으니 통영지역 보건소로 다시 내려가 코로나 검사를 받는것이 원칙이라고 하며 자신들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결국 안과 의사선생님께서 상태를 한번만 다시 봐달라는 부탁을 하셨고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코로나 검사를 받긴했지만 그 몇시간 받았던 스트레스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검사 결과는 당연히 음성으로 나왔고 다음 날의 수술은 문제없이 받을 수 있었다. 선별진료소의 보수적인 대응을 이해하면서도 재채기 몇번하는걸 보고 다른 체크도 안해본채 유증상자로 분류해 아이 상태에 대해 말하는 나를 거짓말쟁이로 대하는 듯한 그 태도는 큰 상처로 다가왔다. 

입원이 불가능한 수술이라 별 수 없이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올림픽파크텔이라는 호텔에서 묵었다. 88서울 올림픽때 마련된 기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호텔은 세월만큼 낡은 곳이었으나 꽤 관리가 잘된듯 큰 불편함없이 쉴 수 있었다. 올림픽공원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이 좋았지만 유리창이 너무 더러워 전망을 제대로 찍을 수는 없었다. 투숙객의 대부분은 호텔 인근의 종합병원 검진을 위해 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팬데믹 상황만 아니면 올림픽 공원 산책도 해보고 인근에 있는 롯데월드도 가보고 하면 좋았겠지만 쉴새없이 전송되는 확진자 안내 문자를 보며 호텔에 콕 박혀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저녁도 어쩔 수 없이 배달 초밥으로 해결했다. 맛은 참 없더라. 통영 캐주얼 초밥집들은 여기 비하면 미슐랭 스타 맛집 수준. 가격이 4만원대였는데도 이 수준이라니. 서울 사람들 참 힘들게 사는구나 싶었다. 

몸이 피곤하니 맥주가 땡겨서 호텔 지하에 있는 매점에서 하나 사왔다. 편의점까지 나가는 것도 부담스러워 어쩔 수 없이 이용하게 된 지하매점은 진짜 작고 허름한 곳이었는데 가격은 호텔급이 맞았다. 테라 작은캔이 3500원이라니. 

 

12시에 수술하러 들어간 아들을 기다리며 밖에서 노트북으로 학교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수술은 한시간가량 걸리는 간단한 것이었는데 회복실에서 3시간을 쉬어야해서 총 4시간을 버텨야했다. 수술이라는 것 자체를 안겪는게 제일 좋은 것이지만 초조한 표정으로 대기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니 이만한 일로 온걸 다행으로 여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먹었던게 떠올라 몸이 급격히 피로해졌다. 이럴 때는 당분을 먹어야지 싶어 병원 지하에 있는 밀탑에 가서 밀크 빙수를 한그릇 흡입했다. 이 병원에 올때마다 꼭 먹곤 하는데 먹을때마다 강남 신세계지하에 있는 팥꽃나무집 빙수 생각이 간절해진다. 

수술을 잘 마치고 나온 아들. 하루정도는 앞을 볼 수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적응력이 좋아서인지 잘 돌아다녔다. 염려했던 복시 증상도 없고 눈에 이물감만 있는 정도라 견딜만한 듯 했다. 정확한 건 다음주에 수술후 검진을 해봐야 알겠지만 일단 무사히 깨어나서 나온 것만해도 다행이다 싶었다. 

전신마취 수술을 하고 바로 내려가면 힘들 것 같아 같은 호텔에 하루 더 묵었다. 유리창이 더러워 제대로 찍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인증샷으로 올림픽공원 야경도 한컷 찍어본다. 

눈이 불편해서 깬 아들이 새벽 풍경을 바라보고 있어 한컷 찍었다. 묘하게 세기말적 분위기가 난다. 이 사진 찍고 나서 또 자러가더라. 

올림픽 공원 입구에 보니 당분간 공원을 폐쇄한다고 되어 있던데 새벽부터 꽤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더라. 이번 주말은 집에서 머물러 달라는 정은경 본부장의 당부는 공허한 울림에 불과한듯. 참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건강을 위해 산책을 하면서 마스크도 쓰지 않은 사람들. 코로나에 걸린다면 그 산책이 다 무슨 소용인가.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통영을 향해 길을 나섰다. 오는 길에 수술했던 병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불안한 마음에 선별진료소에 전화해 문의를 하지 내 동선을 체크해보고는 확진자와 겹치는 부분이 없어서 안심하셔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한달같은 느낌의 2박 3일을 보내고 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지난 며칠간의 서울 생활이 꿈만 같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