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바람이 너무 강해 드론을 날리지 못했는데 오늘은 양호한 편이라 아침부터 통영 이곳 저곳을 담으러 다녔다. 강한 햇살에 눅눅히 젖었던 빨래가 까슬까슬 기분 좋은 느낌으로 말라가듯 어수선한 시국에 대한 걱정이 한컷 한컷 찍어가는 사진 속에서 조금은 희석되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어구 정리에 여념이 없는 선원들을 보며 뉴스로 듣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들은 전부 어디 먼나라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토록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해 갈 뿐인데 쭉정이 같은 정치, 종교, 사회 단체의 지도자들이 괜한 분란을 만들며 나라를 혼란 속으로 몰아가는 이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시간 반 정도 촬영을 하다가 너무 더워서 집으로 피신했다. 드론의 배터리 세개도 다 떨어진지라 충전도 해야했고. 거실에 앉아 TV를 켰으나 볼게 너무 없다. 올레TV를 사용하고 있는데 조만간 끊어야겠다. 요즘은 거의 유튜브나 넷플릭스, 와차만 보고 있기 때문에 굳이 지상파 TV에 돈을 쓸 필요가 없겠다는 판단을 하게된다. 정규방송들이 유튜브같은 개인 방송에 밀리는 것은 다양화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와차나 넷플릭스에 아카이빙 되어 있는 방대한 양의 드라마나 영화,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동안 쌓아왔던 컨텐츠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그리고 시대의 조류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자신들의 장점은 외면한채 그것에 편승하기만 하려는 정규방송들의 한계가 명확하게 보인다. 와차에 올라와 있는 오!수정을 보다가 별별 생각을 다하고 있다.
오후에는 죽림 바닷가에 나가서 수상스포츠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몇컷 찍었다. 비키니 수영복을 걸치고 죽림 자전거 도로 위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여기가 통영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보수적인 동네에서 이런 경험을 하는 날이 올줄이야.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보트를 보며 타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바닷물에 들어갔다가 샤워하고 젖은 옷 뒤처리하는게 너무 귀찮아서 패스.
죽림의 신상 카페에 들러 얼그레이 스무디를 한잔했다. 음료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았던 곳. 시국이 어수선해서 바캉스는 생각도 못할 상황이니 집근처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수 밖에. 카트라이더에 푹 빠져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있는 아들을 보면 행복이라는게 얼마나 상대적인 개념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저녁미사 가던 길에 잠시 들러 북신만 노을을 촬영했다. 일몰각이 아쉬운 시즌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바라보는 석양은 아름답기만 하다. 컨템포러리 사진 찍는 분들은 이런 사진을 왜 남기는지 이해못하겠다는 얘기를 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탄하며 그 순간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본능 중의 하나가 아닌가? 모든 사진이 의미있게 소모될 필요도 없는 것이며 SNS 포스팅용으로 남아 지인들과 순간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개개인에게는 충분한 만족감을 줄터이니 사진의 효용성에 대해 매순간 터무니 없을 정도로 깊은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미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버니니 두병이 있다. 저녁에 탄산음료를 마시면 몸에 죄를 짓는것 같은데 술은 그런 죄책감이 들지 않으니 신기하다. 분명 둘다 나쁘긴 도긴개긴일텐데. 푹신한 소파에 최대한 나태한 자세로 앉아 버니니 한모금을 목에 부어 넘기니 오늘 하루 동안 가슴에 품었던 여러 생각들, 누군가에 대한 분노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술의 순기능에 몸과 정신을 맡기고 하루를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