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졸업앨범 찍는 날이라 하루종일 수업이 제대로 안됐던 날. 예전 같으면 옆에서 사진도 찍어주고 했겠지만 통영여고 학생들과는 아직 그럴만큼 친해진 느낌이 없기에 카메라를 들지 않고 있다. 담임도 안맡은데다 거리를 어느정도 두고 관찰해야할 인성부장이라 인간적 교류가 거의 없는 편이다. 코로나19로 인해서 많은 부분이 위축되어 있고 학교를 옮긴 이후 변한 환경에 내가 적응하지 못한 것도 큰 원인이리라. 그런고로 아마 올해는 학교 사진 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못할 듯. 학교에서 이렇게 까지 사진을 안찍은건 처음이라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다.
저녁밥이 하기 귀찮아 집앞 사리원에서 기름기 좔좔 흐르는 수육 1인분과 테라 한병. 국산 맥주는 맛없어서 안마시는데 테라는 식당에서 먹으면 맛있다(집에서 마시면 이 맛이 안나는게 신기하다.). 작년 여름부터 테라를 자주 마셨는데 좋은 기억들이 많이 얽혀있어서 그런지 가끔 한잔씩하면 다운됐던 기분이 업되곤 한다. 역시 나는 맛보다는 추억으로 먹는 사람.
부대찌개 맛집에서 수육에 맥주만 마시고 갈 수는 없지. 부대찌개에 라면 사리 추가. 칼칼하고 개운한 국물이 참 좋다. 건강에 좋은 음식은 아니고 다이어트의 완벽한 적이긴 하지만 정신건강을 위해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맛이다. 한때는 근처에 있는 조인수부대찌개에 한눈을 팔기도 했지만 통영 부대찌개의 최강자는 역시 사리원이다.
흰쌀밥에 부대찌개와 라면사리의 조합은 진리. 2016년에 다이어트 시작하면서 탄수화물을 거의 끊었고, 다이어트를 끝낸 이후에도 흰쌀밥은 정말 조금씩만 먹고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고기든 뭐든 쌀밥과 같이 먹을때 제일 맛있기 때문에 그걸 버린다는건 한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미식의 반쯤은 포기하는것과 같다. 크게 뜬 밥한숟가락 위에 고기든 뭐든 올려서 입안 가득 넣고 씹을때의 그 맛, 쾌감은 깨작 깨작 먹는 것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마음 같아서는 양푼에 이것저것 다 때려넣고 비벼먹고 싶었다. 열심히 먹고 집에 돌아와 운동 두시간 하고 나니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항상 어긋나지 않는 루틴. 지금이야 살 빼는게 아니라 유지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어서 먹고 운동하는 방법으로 가고 있지만 감량을 위해서는 운동보다 먹는걸 줄이는게 더 큰듯. 아무리 열심히 운동해도 많이 먹으면 체중이 불어날 수 밖에 없다.
그냥 자기가 너무 아쉬운 저녁이라 와챠에서 블레이드러너 2049를 틀어놓고 위스키 한잔. 글렌캐런잔에 작은 각얼음을 채워놓은 온더락이라니. 마니아들이 보면 경악할 일이지만 나는 독한 위스키가 물에 희석되서 순해지는게 너무 좋아 이렇게 먹는걸 선호한다. 남보기 좋으라고 마시는거 아니니까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