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사실 몇년전까지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1999년 겨울, 세기말의 엄혹한 분위기 속에서 신병교육대 6주간의 훈련을 버텨내고
칼바람을 맞으며 450트럭 짐칸에 실려 자대로 배치된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부대에 왠 트럭들이 들어와 짐을 한가득 내린 뒤 떠났고
우리는 그것을 소대별로 배분해 들고 돌아갔다.
박스에 담겨 있던 의문의 물건은 귤,
그해 슈퍼 대풍이었던 귤의 값이 떨어지자 정부가 수매해
많은 양을 전국 각지의 부대로 배분했던 것이다.
일인당 한박스가 넘는 귤이 배당되었고 과일보기 힘든 군생활의 특성상
처음에는 왕고부터 이등병까지 모두 이 의외의 선물에 행복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가 던져준 연말의 선물이 악마의 음식물로 변하는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귤의 양 때문에 소대원들은 지쳐갔으며
그 와중에 상하기 전에 전량 소비하라는 간부들의 독촉은 계속되었다.
결국 고참들에게 배당됐던 귤들은 모두 짬 순으로 밀려 내려가기 시작해
일병과 이등병들은 귤의 홍수 속에서 허덕여야 했다.
귤을 너무 까먹어서 손톱 사이사이에는 귤껍질의 잔여물과 귤향이 스며들어 있었다.
화장실에서도 귤향이 스멀 스멀 풍겨나올 정도였다.
고참들은 후임병들의 입안에 귤이 몇개까지 들어가는지를 테스트하는 신종 가혹행위를 개발해냈고
취사병들은 귤밥, 귤튀김, 귤무침 등의 신메뉴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야간 근무를 나갈때도 탄입대에 귤을 챙겨가 먹어야 할 정도였으니
그 심각성을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귤의 난, 혹은 귤의 역습이라고도 부를만한 사태였다.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귤로 가혹행위를 당하다가 결국 부대 앞에 있는 바닷가에 몰래 묻어버리기도 하고
근무 투입로에 있는 숲길에 버리기도 한 결과 귤의 난은 끝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그후 몇년동안 귤 트라우마에 시달렸던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20년이 지난 일이라 귤을 한 몇개쯤 먹을 수 있는 수준까지 회복되긴 했지만
아직도 박스에 가득 담겨 있는 귤을 보면 그 겨울의 고난이 생각나 몸서리를 치게 된다.
오늘 집앞 채소가게에 양배추를 사러갔다가 말랑말랑하게 잘익은 귤을 몇개 사와 먹으며
지난 세기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렇게 힘들어하던 귤향과 맛을 극복하고
저녁 대신 먹고 있는 나를 보며 지나고나면 모든게 추억이라는 말이 진리임을 다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