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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1세기 소년 등으로 한국에도 꽤 알려져 있는 작가이자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을 축하하며 그린 축전이 화제가 됐던 우라사와 나오키의 옴니버스 형식 만화다.

(정확히는 각본은 카츠시카 호쿠세이, 나가사키 타카시, 작화를 우라사와 나오키가 담당.

여기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관계로 공식 설명을 따른다.)

이 만화는 완전판 12권에 리마스터라는 이름으로 20년 후의 에피소드를 모은 특별판이 한 권 발매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전권을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에피소드 하나마다의 완결성이 뛰어나다.

요즘 나오는 옴니버스 형식의 만화들이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를 진행하다

큰 맥락을 이루는 사건이 조금씩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그것을 해결하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반면

마스터 키튼에는 그러한 큰 사건이 없다.

만화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것은 도나우 문명설을 밝혀내고 싶은 주인공의 바람,

그리고 헤어진 아내와의 관계 회복을 바라는 소소한 마음이지만

완결 편에 이를 때까지 그에 대한 완벽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는다.

(이는 20년이 지난 후의 상황을 그린 리마스터 편에서도 거의 비슷하다.)

고대사에서부터 근현대사까지 역사와 관련된 깊은 내용을 주인공인 키튼이 조사해나가며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인 플롯.

(키튼이 아예 등장하지 않고 주변 인물이 주역이 되거나 소소한 일상에 대한 에피소드도 가끔 등장한다.)

 

일본인 학자인 아버지와 영국 명문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양국의 언어를 모두 자연스럽게 구사하며 문화에 대한 이해도 뛰어남.

어린 시절 영국의 명문 퍼블릭 스쿨을 거쳐 옥스퍼드를 졸업한 재원.

SAS에 입대하여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웅으로 불릴만한 업적을 남긴 군인.

영민한 머리와 해박한 지식, 군대에서 단련한 생존기술과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로이드 보험조사원으로 일하던 중 일반인들은 한번 만나기도 어려운 사건들을 겪으며

대단한 명사들과의 인연을 쌓아감.

이렇게 보면 대단히 성공한 인생 같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꿈꾸고 있는 대학 교수 자리는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으며

아내와는 이혼하고 홀아버지, 딸 하나와 사는 돌싱남.

도나우 문명 기원설을 주장하며 발굴까지 해내지만 학계에 연줄이 없어

아마추어 몽상가 정도로 취급받고 있는 안습의 인물.

마스터 키튼의 주인공인 하라가 다이치 키튼에 대한 설명이다.

인디애나 존스와 맥가이버, 베어그릴스을 합쳐놓은 것 같은 먼치킨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요령이 부족해 좌충우돌하고 있는 모습이

이 만화의 주인공을 누구나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고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엄청난 성공 스토리는 보여주지 않으며

의지를 가지고 자기의 길을 계속 모색해나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마무리되기에

이 만화는 끝났되 끝난 것이 아니다.

마치 쉼 없이 이어져가는 우리네 인생처럼.

이 만화를 처음 접했던 것은 중학교 시절부터의 절친이었던 곽군으로부터 권유받은 고3 시절.

그것도 무려 수능 전날이었다.

동네 서점에서 구판 전권을 구매해서 시험 전날 저녁까지 탐독하다 잠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돌아보면 악마 같은 친구였구먼 곽군 ㅋㅋㅋㅋ)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내가 역사교육과에 진학하는데 한 1-2% 정도는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막연하게 역사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는 인디애나 존스 아니면 이 만화에서 봤던 주인공과 관련된 것이었으니까.

실제로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느낀 건 완전히 다른 세계였지만.

20년이 지나도 여전한 모습으로 만화 칸 속을 뛰어다니는 키튼을 보며

남들 보기에는 몇몇 가지를 이룬 것처럼 보이나

스스로 생각할 때는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는 내 인생을 위로받으며

큰 성공은 없더라도 내가 바라는 소소한 것들을 이루기 위해 계속 걸어가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최애 만화 중의 하나로 마스터 키튼을 드는 이유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인생의 마스터일 뿐 어떤 실수도 하지 않는 프로는 아니기에

'프로페서는 못되겠지만 마스터는 될 수 있겠어'

라는 만화의 대사가 이토록 가슴에 남는 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