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alkabout

백두산 원정기 3/5 - 구름의 대지를 밟다.

by coinlover 2007. 9. 5.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송강하에서의 밤은 무척이나 짧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백두산을 오른다는 설레임과 긴장감에

술에 취해 늦게 잠에 들었음에도 눈이 저절로 뜨였다.

창밖을 바라보니 하늘이 흐렸다.

천지를 제대로 보지 못할까 괜스레 걱정이 되었다.

어제 저녁에 챙겨놨던 등산화를 신고 발을 디뎌보니

몸이 가벼운게 감이 참 좋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니 선생님들이 한두분 씩 내려오셨다.

여기서 우리는 사상초유의 빈곤한 식사를 맞이하게 되니....

고기로 보였던 것도, 감자로 보였던 것도 모두 무~

무~무~ 무로 시작해서 무로 끝나는 정말 무~한 아침식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나마 꽃빵과 삶은 계란이 있어 위안이 되긴했지만...

옆 테이블을 보니 닭도 나와있건만 우리 식사는 왜 이런 것인지....

정말 맛없는 아침이었지만 그래도 백두산 오르려면 먹어야된다는 생각으로

꾸역구역 꽃빵을 입안에 쑤셔 넣었다.

김병기 교감샘은 그 등산가서 드실 요량으로 꽃빵을 챙겨가려 하셨는데

주인에게 제재를 당하고 말았다.(물론 우리의 김병기 교감샘이 누구신가?

결국 이빵을 백두산까지 챙겨오셨다. ^-------------------^)

 아침을 먹고 식당 밖으로 나오니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다 그친다.

전수근 단장님께서 비옷을 가져왔냐고 물으셔서 없다고 대답했더니

입고 계시던 방수자켓을 벗어주신다.

이렇게 챙겨주시니 내가 선생님을 안모실수가 있나....

아침부터 스승의 은혜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애써 감추며

짐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빨리 출발해야할터였으나 호텔주인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김남호, 이상두 선생님 방의 수건이 없어졌다는 이유였다.

그 방에는 손수건만한 수건 두장 외에는 없었다는데

과연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

대체 누가 가져간 것일까?

아니 애당초 있기나 했던 것일까?

한국이었다면, 우리의 갈길이 바쁘지만 않았다면

어떻게 땡깡이라도 부려봤을텐데..

백두산을 향해가는 우리의 마음은 바쁘기만 했던 관계로

결국 가이드인 종오씨가 변상하는 걸로 일단락 짓고 버스는 출발했다.

백두산까지 가는 길에 또 그리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버스를 탄것같다.

종오씨가 해주는 백두산에 대한 설명과 주의사항, 용왕설화(?) 등을

듣고 있다보니 어느새 서파 아래의 주차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서부터 또 한시간 정도를 전용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굽이굽이 꺾어진 길을 버스를 타고 오르니

고도에 따라 식생분포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참 신기했다.

버스 안에서는 중국인 가이드가 중국어로 뭐라 뭐라 설명을 계속했는데

중국어는 그냥 말해도 억양이 쎄서 참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시끄러운(?) 가이드의 설명이 빨리 마치기를 바라며 강정중 선생님께서 이런 저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 가이드가 강정중 선생님께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

만약 강정중 선생님이 이후 또 백두산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필히 정보원을

파견하여 감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본 종군기자의 견해입니다.ㅡ_ㅡ;;;)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긴시간의 버스 여행끝에 도착한 백두산 차에서 내리니

5호경계비로 향하는 지옥의 1236계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는 흐리고 앞에 버티고 있는 계단은 버거워보이고....

시작부터 눈 앞이 막막했다.

옆에 중국인 상인이 파는 비닐 비옷을 2000원 구입한 후

드디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원래는 안사려고했는데 가이드가 사는 걸 보고 다 사야하는건가? 하고 구입했다.

처음에는 돈이 좀 아까웠는데 나중에는 이 비옷 덕분에 카메라를 살리게 되었다.)

종군 기자였던 내 임무는 이 모든 일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기록하는 것.

아무리 힘들어도 사진기를 버릴 수는 없었기에 가쁜 숨을 골라가며

이곳 저곳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간에 백한식 선생님의 따님이 버스 멀미로 인해 오바이트를 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백두산 트레킹의 시작인 1236계단은 큰 무리 없이 오를 수 있었다.

그냥 걸어서 올라가는 것도 힘든데 들것에 관광객을 태우고 다니는 현지인들을 보며

참 먹고 살기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어쨌든 가쁜 숨을 내 뱉으며 마지막 계단을 박차고 오르니

눈 앞에 펼쳐지는 장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곳이 바로 천지였다.

흐린 하늘에 안개가 껴있어

사진에서 보던 그 영롱함은 살짝 빛이 바랜듯 했지만

그래도 천지는 천지였다.

자연이 보여주는 장엄함에 한동안 말을 잊었다.

여기를 보기 위해서 그동안 그 고생을 했구나 싶었다.

한동안의 감흥이 약간 진정된 후

원정대원들은 돌아가면서 기념 촬영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른쪽에 5호 경계비가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 작은 비석 하나로 국경이 갈라진다는게 참 묘했다.

우리는 북한땅을 밟아봐야 한다면서 5호경계비 너머를 서성거리기도 하고

5호경계비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도 하며 분단의 아쉬움을 달랬다.

북한땅을 거쳐 왔다면 이렇게 긴시간을 둘러오지 않았어도 될 것을....

다시 한번 분단국가라는 현실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반 관광객이라면 여기서 잠시 천지를 구경하고 기념 촬영 후 하산 하겠지만

우리는 백두산 원정대~ 트레킹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

모여있는 관광객들을 뒤로 하고 백두산 레인저 출신의 셀파를 따라

험난한 백두산 트레킹의 길을 나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 출발했을때는 이곳 저곳에 피어있는 야생화들을 구경하느라

힘든 줄도 모르고 이리 저리 셔터를 눌러댔다.

청석봉을 향하는 길은 뒤에 맞이할 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완만했고

내려오는 길이 좀 험하긴 했지만 큰 어려움은 없는 완만한 코스였다.

중간에 펼쳐진 넓은 초원에서 단체 사진도 찍고 아주 화기 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때까지는 낙남 엘리트 선생님들도 뒤에서 따라오실 뿐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셨기에 산행의 빡쎔은 그렇게 느낄 순간이 없었다.  

청석봉을 정복하고나니 계속되는 내리막길....

나는 힘들게 올라갔던 길을 내려가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했다.

아니 다시 내려갔다가 오늘 정복해야할 최고지인 백운봉을 올라야 한다는게

두려웠던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들꽃들을 보며 내려가니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한허계곡~

먼저 내려가셨던 전수근단장님 일행이 발을 담그고 계셨다.

나도 등산화를 벗고 발을 물에 담궜는데 그 차가움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발을 넣었다 바로 빼도 얼얼한 정도의 냉기였다.

(미적지근해진 물병을 계곡물에 담그니 5분도 안되어 냉장고에서

꺼낸 듯한 온도가 되더라~)

여기서 다시 시작된 낙남의 전통, 내기걸기~~

물을 발에 담그고 1분을 버티는 사람에게 만원을 내놓겠다는

단장님의 말씀에 백한식 선생님께서 도전하셨지만 고배를 마시셨다.

역시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고 있는데

혜성같이 나타난 현지인 강정중 선생님~

그 뭣이라고~~ 를 외치며 입수

1분은 장난이고 2분을 훌쩍 넘기는 모습을 보이며 좌중을 압도했다.

(역시 강정중 샘을 비롯한 낙남 엘리트들의 신체는 일반인의 것이 아닌 듯....)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계곡에서의 달콤한 휴식이 끝나고 우리는 제일 밑에서부터

다시 백운봉을 향해 산행을 시작했다.

산을 자주 다녀보지 않은 나는 이미 청석봉을 오르내리면서

체력이 다되어갔던 터라 백운봉 정복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연신 가쁜 숨을 내쉬며 기듯이 산을 기어오르고 있는데

전수근 단장님, 김병기 교감샘을 비롯한 몇분도 힘이 많이 드는 분위기다.

이때부터 낙남 엘리트들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리도 힘들어~~"

라고 말은 하고 있었지만 입가에 걸린 미소,

성큼성큼 산을 정복하는 위풍당당한 발걸음...

아아 엘리트와 평민의 차이는 이다지도 컸단 말인가?

중간 쯤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잠시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면

아마 낙오하고 말았으리라.

사실 이때 선생님들 사진 찍을때는 숨이 너무 차올라서

사진을 찍는건지 마는건지도 잘 알 수가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귀순 대장님께서 힘들면 가방을 넘기라고 하셨지만

내 어찌 그럴수가 있겠는가?

이곳이 남해의 평범한 산이었다면 기꺼이 가방을 넘겼을 것이나

내 인생에 다시 올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민족의 영산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남해의 기상을 드높이고 돌아가겠다는 결심은 전수근 단장님도

마찬가지였던 듯 우리는 합심이라도 한듯이 손사레를 치며 가방을 고수했다.

체력은 바닥을 드러냈지만 그 기세만은 호랑이라도 튀겨먹을 듯한 사제였다. ㅡ_ㅡb

열걸음 걷고 쉬고 또 열걸음 걷고 쉬고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백운봉 아래의

평원까지 정복~~~

넓게 펼쳐진 평원은 안개로 뒤덮혀있어 마치 신선이 사는 곳인듯 했다.

전수근 스승님과 나는 순간 피곤함도 있고 평원을 돌아다녔다.

구름의 대지..... 순간 내 머리속에 떠오른 단어였다.

그렇다. 여기는 인간들의 영역이 아닌 자연의 영역, 구름이 감싸고 도는 대지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구름 속의 초원을 밟으며 민족의 정기를 느끼고 있었다.

이런 곳을 영유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고구려인과 같은 기상을 가지지 못했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리라.

백두산은 날씨 변화가 심하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우리가 백운봉 아래에 도착할때 까지는 나름 날씨가 좋아

운이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백운봉 아래에 가방을 풀고 점심을 먹으려 하니 날씨가 심상치 않아졌다.

그때 전수근 단장님의 한마디

"야~ 우리가 눈만 맞아 봤으며 백두산의 사계를 다 느끼는 건데 말이야~"

라는 말씀이 끝나니 곧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점심은 눈물젖은 김밥으로 바꼈고 이 상황은

아래의 사진과 같은 명장면을 연출하게 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흐르는 빗속에서 밥을 먹고 나니 또 그치는 비....

이것은 혹시 눈을 간절히 바란 전수근 선생님의 마음이 불러낸 현상은 아니었을까?

(전문용어로는 천인감응설이라고도..... ㅡ_ㅡ;;;)

밥을 먹고 앞장서는 셀파를 따라 녹명봉으로 향했다.

이제 왠만한 난코스는 다 끝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여기서 고백합니다. 저 김석진... 사실 셀파가 백운봉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우회하는 걸

보고 너무 행복했습니다 ㅠ_ㅠ 낙남 엘리트 선생님들께서 백운봉을 오르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체력 고갈상태였습니다. ㅠ_ㅠ)

천지를 끼고 그 외륜봉을 트레킹한 것이니 남은 시간동안 우리는 지겨울 정도로

천지를 볼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산세도 완만했고 배경도 너무 멋져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낙남 평민 회원들이 유유자적 천지를 감상하며 산을 도는 동안

낙남 엘리트 들은 백운봉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즐기며 그들만의 성취감을

맛보았으리라~ 아아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낙남 엘리트~

그들은 쉬운 산도 어떻게든 난코스를 찾아 넘으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참을 걷다보니 안개속에서 기이한 모습의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수근 단장님께서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으라 하셨는데

역시 그냥 봉우리는 아니었던 바, 그곳이 바로 녹명봉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