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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생각해보면 모든 것의 시작은 6월에 어게인 실비에서 있었던 술자리였다.


29살이 되도록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 자리에서 전수근 선생님께 백두산 등반에 동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즉석으로 김병기 교감 선생님과 함께 원정대원이 되었다.


사실 여름 방학 보충을 빠지고 해외에 나간다는 것이 참 부담스러웠는데


전수근 선생님께서 학년부장님의 허락을 얻어주시어


생애 최초의 해외여행을, 그것도 민족의 영산이라는 백두산으로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등산에 전혀 취미가 없었던 내게 그날 이후의 일정은 전쟁이었다.


10시간 가량 등반을 해야한다는 말을 듣고 떠오른 것은


2005년 7월에 이호대 선생님에 이끌려 천왕봉을 등반했던 일이었다.


그때 학생들과 함께한 터라 힘든 내색도 못하고 얼마나 괴로웠던가...


내려온 다음 날은 시름시름 앓기까지 했었지 ㅠ_ㅠ;;;;

사실 술기운에 백두산 가고 싶다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만큼의 체력이 안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던터라

다음 월요일부터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0바퀴, 다음에는 15바퀴, 그리고 20바퀴까지

두달여의 시간동안 운동장 20바퀴, 근 8km을 매일 뛰었다.

비가 오는 날은 러닝 머신으로, 진주에 오는 날은

천수교에서 경상대학교까지의 거리를 뛰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확실히 체력은 늘어가고 있었다.

평생 등산화가 필요할까 생각했던 내가

트렉스타에서 20여만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여

등산화도 구입했다.

전수근 선생님을 따라 남해의 산을 돌아다니며

나름대로의 특훈도 하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갔다....

출발을 며칠 앞두고 백두산 원정 일정에 중대한 차질이 생겼다.

백두산 트래킹을 준비했던 산이좋은 사람들이 8월 1일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수근 단장님은 산이 좋은 사람들에 항의하는 한편 즉각

롯데 여행사 박사장님과의 물밑 교섭을 시작하셨다.

결국 전수근 단장님과 여러 선생님의 발빠른 대응으로

출발 4일전에 일정이 결정되는 기염을 토하며

우리는 백두산 원정의 쉽지 않은 첫발을 드디어~ 드디어 내딛게 되었다.


제1화 하늘을 달리다

8월 1일 아침 공설운동장에 모인 우리는 전수근 단장님, 이운학, 이강웅 선생님의

차를 나눠타고 인천 국제 공항을 향해 달렸다.

다른 차의 상황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차의 경우 노래를 좋아하는 전수근 선생님께서

음악을 틀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대화가 오갔다.

(우리차 멤버는 운전 전수근 단장님, 조수석, 이귀순 선생님, 뒷좌석 왼쪽 김병기 교감선생님

뒷좌석 가운데 나, 그리고 뒷좌석 오른쪽 이두만 선생님)

아프간 피랍사태에서 자동차 얘기,

전수근 단장님과 이두만 선생님간에 있었던

자동차는 왜 벼락에 안전한가 내기 등등

유쾌한 기분을 만끽하며 우리는 인천을 향하고 있었다.

영종도에 도착해서 가볍게 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나려는 찰나

이강웅 선생님의 트라제에 밥을 줄 시간이 다가오고 말았다.

이 녀석이 LPG라는 특정 지역에만 파는 밥을 먹는지라

강정중 선생님의 인도를 따라 충천소를 찾아나섰는데.....

선생님은 충천소 찾기는 실패하신채 영종도 유람에 나서셨고

결국 이번 여행 기간동안 똑똑하다고 칭송받게 되는 전수근 단장님의

네비게이션께서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ㅡ_ㅡ;;;;

(원래 남가람 모임에서는 이두만 샘이 향도 역할을 하셨는데 이 네비게이션 때문에

실직하셨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이런 저런 일들을 겪어가며 도착한 공항 장기주차장~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보며 입이 벌어졌다.

우리나라에 장기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이 이토록 많았다는걸

처음 안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요즘 살기 힘든거 맞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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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 롯데 본사에서 나온 가이드와 만났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시원하게 생긴 호남이었다. 첫인상은 무진장 좋았지만

티켓을 나눠줄 때 나에 대한 호칭은....

"김석진 아버님~~~"

완전 쓰러지셨다. 더불어 인상도 급 나빠졌다.

나랑 동갑이면서 애까지 있다는 이사람, 어떡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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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 다단한 출국 절차를 거쳐 드디어 비행기에 오른 우리들...

AIR CHINA의 소형 항공기에 타고 출발을 기다렸다.

(공동경비를 출자해 면세점에서 샀던 죠니워커 블루를 고이 품은
 
내 가슴은 두근반 세근반~~~)

작년에 황산 갔던 낙남팀은 연착으로 인해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다는데

다행히 이번 비행기는 제때에 날아올랐다.

지상을 차고 오르는 이 느낌, 너무나 오랜만에 느끼는 이 기분에

잠시 머리가 멍해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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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을 뚫고 상공에 오르니 흐렸던 아래 세상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해외여행 좀 즐긴다. 사진 좀 찍는다 하는 사람들의 블로그에

꼭 한장씩은 올라있는 항공 사진을 드디어 찍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지나고 나서 사진을 보니 그때의 그 아름다운 하늘을 반도 못살린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귀에 환청처럼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 라는 노래가 들려왔다.

좀더 긴 비행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인천-대련간의 거리는 너무 짧았다.

실제 비행시간은 50분 남짓... 어느새 창밖으로 대련의 풍경이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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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내려서 입국 심사장에 도착하니 먹먹했던 귀가 뻥 뚤렸다.

입국절차는 친절한 가이드님이 다 처리해주셨던 터라 약간의 기다림 후에

공항 출구로 빠져 나갈수 있었고 그곳에서 조선족 가이드 종오씨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조선족 이미지 딱 그대로였던 이 청년은 붙임성도 좋고 친절해

여행내내 우리의 요구를 이래 저래 잘 처리해 주었다.

공항 밖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우리가 3일 동안 타야할 은색 버스~

나는 내심 버스 크기가 작아 실망하고 있었는데

전수근 단장님왈 "올해는 버스가 작년보다 커서 좋네"

ㅠ_ㅠ 아니 그럼 작년에는 대체 어떻게 다니셨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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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을 출발한 버스는 대련 시내를 향해 시원하게 달렸다. 버스안에서는 가이드 소개가 있었는데

종훈씨 외에 현지가이드인 양평씨가 같이 가게 되었다.

여자한테 이런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군 시절 친하게 지냈던 선임병 이충호 병장과

너무 닮아서 순간 흠칫했다~~(미안해요 양평~)

차창밖으로 대련시의 풍경이 어지러이 스쳐 지나갔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게 외제차 전시장이 많았다는 건데

뒤에 들은 말로는 중국에 외제차 현지 공장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

가격도 싸고 많이 타고 다니는 편이라고 한다.

하긴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택시가 대부분 폭스바겐사 제품이었으니까..

한 20분 정도를 달렸나?

번화가로 생각되는 곳에 들어가니 유난히 KTV나 大酒店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거대하고 멋진 건물에 대주점이라니~~ 대국은 술집 규모도 틀리단 말인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때쯤 종오씨의 친절한 설명이 따랐다.

"중국에서 대주점은 호텔을 말합니다. KTV는 노래방입니다."

오호라 그런 것이었나~~

중국 무협지에 보면 객점이 자주 나오는데 술마시고 자고 그러는 데였으니까

비슷하게 생각하면 호텔의 중국식 명칭이 대주점이 된것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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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화랑궁이라는 조선인 식당에 들려서 저녁을 먹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음식이 느끼하다거나 향신료 덩어리는 아니었다.

물론 조선인 식당이라서 그런 거겠지만. 하루종일 차타고 비행기타고 하느라

심신이 좀 피곤했는데 여기서 먹은 칭따오 맥주 몇잔이 피로를 확 날려 주었다.
 
그러나 그때까지의 일정은 남은 시간에 비하면 소발의 피~~

5일동안 장장 2000여km에 달하는 버스 여행을 하게될 우리의 고난은

이 시점 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대련에서 심양까지 4시간에 달하는 거리(여기서는 버스만 타면 기본이 진주-서울거리다 ㅠ_ㅠ)

를 달리는데 중국 도로는 중앙선도 없고~ 고속도로라는데가 노면이 울퉁불퉁해서

늦은 저녁 버스를 타고 가는게 매우 불안하게 느껴졌다.

전수근 단장님이 주신 고량주 한잔과 역사스페셜이 아니었으면

잠도 자지 못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유인촌씨 목소리가 자장가야~~ 역사스페셜 틀어주니까 곧 다들 잠이 들더라)

그렇게 몇시간인가를 달려 도착한 곳은 심양~

이미 중국 시간으로도 12시가 지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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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시간이라 다들 방찾아 들어가 쉬는 것만 생각하는 듯 했다.

그렇게 방을 배정 받고 들어가니 (방돌이는 진희형~)

3성급 호텔의 위용이 드러났다. ㅠ_ㅠ

네녀석~~ 호텔의 이름을 한 모텔이었구나~~

그래도 뭐 피곤한 몸 누울곳, 샤워할 곳이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딘가?

대충 샤워를 마치고 단장님 방에서 첫날 일정 마무리 회합을 가졌다.

내 관심사는 단연 (면세점에서 구입한) 죠니워커블루~~

내 생에 언제 저 비싼 술을 마셔볼 것인가 하는 설레임에

단장님 방으로 날아갔다.

대원들이 다 모이기에는 좀 좁은 듯 했지만 그래도 뭐 좁은 공간속에서

스킨쉽을 통해 우정이라는게 소록소록 생겨나지 않던가~

(사실 죠니워커 때문에 방이 좁고 자시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이래 저래 담소를 나누며 술잔을 주고 받으니 어느새 동이 나버린

죠니워커~~(의외로 술이 안받는 날이라 한잔 밖에 못했다~

평소같으면 이 좋은 술을~~하면서 병나발 불었을텐데...)

그대로 잠을 청하기엔 너무 아쉬운 감이 있었는대

이귀순 선생님께서 애써 챙겨오신 소주 3병과 마른 안주를 찬조해 주셨다.

뭐 결국 그것도 모자라서 나중에 마시기로한 2주 두팩을 더 까고 나서야

자리를 파했지만~~

대충 술자리 정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누으니 피로가 급히 몰려왔다.

낯선 땅 중국에서 맞이한 첫날은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 계속 (본격적인 이야기는 다음 편부터.... 첫날편은 내용은 없고 사족만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