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드립을 시작한 지 일 년이 지났지만 맛있는 커피라는 것에 대한 확고한 선을 그어내지 못했다.
좋아하는 카페들에서 마셨던 드립커피 맛을 가까스로 흉내낸 결과물을 마시며 자뻑에 빠지곤 하지만
다른 종류의 드리퍼와 필터가 만들어 내는 섬세한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원두, 그라인더 종류, 분쇄 정도에 따른 차이, 물 온도와 추출 시간에 따른 차이 등
수많은 변수들 중 내가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고작 원두 마다 다른 확고한 맛의 차이였을 뿐.
어떤 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사람들은 내가 쫓아갈 수 없는 어나더 레벨의 존재들이었다.)
처음 몇달간은 테이스팅 노트를 적어가며 구분을 하려 했고 실제로 그런 노력을 들이던 때에는
확실히 미세한 차이를 좀 더 잘 캐치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게 너무 부담스러워졌다.
내가 커피 전문가가 될 것도 아닌데 왜 커피를 공부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 순간 현타가 세게 왔고
그때부터는 그냥 좋다 싫다 정도만 구분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마시고 있다.
지금의 내게 괜찮은 커피용품을 판단하는 기준은 드립할때 최대한 예뻐 보일 것.
그리고 내가 커피를 잘못 내리고 있다는걸 느끼지 못하게 해 줄 것 정도다.
빈플러스의 디에센셜은 26800원짜리 저렴한 1인용 핸드드립 세트로
드리퍼와 서버(플라스틱 원두 스쿱과 필터 몇장 포함)로 구성되어 있는데
솔직히 비싼 펠로우 제품들보다 만족감이 높아
커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줄만한 아이템이다.
대충 내려도 있어 보이고 맛도 일정 수준 이상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