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서울 종로.
부산은 광복동, 서울은 종로. 우리 동네처럼 머무르곤 하는 곳들.
한때는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식상해지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오니 그저 좋았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테라로사에서 드립커피 한잔. 언제나 그렇지만 여긴 내 미각 하곤 좀 안 맞는 듯.
슈트리가 한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나 하나만 주지.
청계천은 정말 정말 오랜만. 그냥 스쳐지나간 거였지만.
이명박씨 청계천은 미래로 흐르고 있습니까?
오복수산에서 점심 먹으려다 1인은 안된다고 해서 돌아가던 길. 광화문에서.
이쯤에서 이미 2만 보 돌파. 신발이 불편해서 발에 불이 나고 있었다.
옛 류가헌 골목. 첫 개인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사진가들이 쉼없이 드나들던 사랑방 같은 곳이었는데.
류가헌이 여기 계속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라운드 시소 서촌에 힙노시스 전시 보러.
맨날 지나다니던 길인데 그 안쪽에 그라운드시소가 있는 줄은 몰랐다.
지금 봐도 아이디어가 멋진, 현대 사진 전시장에 걸어도 꿀리지 않을 듯한 힙노시스 스튜디오의
고퀄리티의 사진들이 한가득이라 즐겁게 관람하고 나왔다.
포토샵도 없던 시절에 지금보다 더 나은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낸 이들의 궤적을 감상하며
중요한 건 아이디어와 그걸 구현하기 위한 끈기와 열정인걸 다시 깨달았다.
인증샷 찍기는 참 좋게 만들어놨지만
정작 몇몇 중요한 사진은 프린트가 너무 아쉬워서 왜 이랬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옥 지붕 위로 목련이 너무 탐스럽게 피어있길래 예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그 건물 입구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뭔가 싶어 쳐다봤더니 인텔리젠시아 서촌점. 한국에 들어온다는 얘긴 들었는데 어느새 개점을 했나 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어 웨이팅 대열에 동참. 한 20분 정도를 기다린 끝에 입성할 수 있었다.
미국 3대 커피라고 해서 엄청 기대를 했는데 솔직히 대단한 임팩트는 없었다.
산미와 단맛의 밸런스가 좋은 약배전 커피 흠 잡을 데는 없었지만
테라로사 창업주가 마셔보고 느꼈다는 놀라움은 잘 모르겠더라.
몇 년 사이 한국 커피씬의 수준이 너무 올라가 버린 탓이겠지.
굳이 인텔리젠시아가 아니더라도 이 정도 수준의 커피는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휘낭시에는 거의 테린느 수준의 꾸덕한 식감, 나쁘지 않았다.
인테리어의 경우도 한옥을 개조한 넓고 쾌적한 공간이었지만 워낙 개성 넘치는 카페들을 많이 봐서
무난하다는 느낌만 받았을 뿐.
한국이 참 무서운게 하나에 빠져들면 끝을 봐버리니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어쨌든 자주 올 곳은 아니라서 봄시즌 블렌드 원두 한팩 구입하고 나왔다.
페르세포네. 데메테르의 딸이자 하데스의 아내. 하데스에게 납치당했다가 데메테르의 분노와 제우스의 중재로 인해
일 년의 1/3은 명부에서, 2/3은 지상에서 보낸다는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왔나 보다.
페르세포네가 머무르는 동안 세상에는 온갖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고 하니 봄시즌 블렌드의 이름으로 나쁘지 않은 듯.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는 이상적인 바리스타라면 이런 얘기로 입을 털며 고객과 교감하는 것이 맞을 테지만
현실의 바리스타들은 바빠서 정신이 없어 보이더라.
익선동 인근을 배회하다 들어간 호호식당. 혼밥을 받아주는 곳이 여기밖에 없었다.
분명 카이센동을 시켰는데 이건 연어 지라시동에 가깝지 않은가....
그래도 밥이라도 내준 게 어딘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순삭.
2만보를 넘게 걸었더니 달달한 게 당겨서 국현 오설록으로 이동해 한라봉 오프레도도 한잔.
이것도 오랜만에 마시니 참 좋더구먼.
이날 3만 5 천보 정도를 걸었는데 돌아보니 한 일은 별로 없는 듯. 동선 낭비가 심했던 것 같다.
그래도 오랜만의 종로라 꽤 즐거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