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95년 가을 무렵, 진주 중앙시장 인근에 KFC 진주점이 오픈했었다. 가로폭이 좁고 세로로 길었던 매장은 3층까지 있었는데 그중 2층이 조용히 시간 보내기 너무 좋았던 공간이라 틈 날때 마다 치킨 한두조각에 비스킷 하나 주문해서 짱박히곤 했다. 켄터키 할배라고 부르던 커넬 샌더스 아저씨 조형물도 당시로서는 상당히 힙한 느낌이었고 그때의 KFC는 지금과는 인상이 많이 다른 곳이었다. 그시절 진주고등학교 1-10반 반장이었던 나는 야자 도중 KFC 가고 싶다는 친구의 꼬임에 빠져 교실에 있던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탈출을 감행, 매장 2-3층에 전세 낸듯 앉아 치킨버거를 먹고 돌아오기도 했다. 가방 챙기러 들어가다가 야자감독이셨던 지옥의 빽핸드 오용식 선생님께 걸려서 먹은 거 다 토해낼 정도로 오리걸음 했던 건 안습이었지만 이렇다할 사고 한번 안쳐보고 모범생으로 살았던 내게 야자 이탈은 엑소더스 급의 대사건이었으며 KFC 매장을 점거(?)하고 징거버거로 건배를 했던 그 순간은 지금도 인생에서 손에 꼽는 즐거웠던 기억 중 하나로 남아 있다. 90년대 중반의 진주에는 롯데리아 외에 이렇다 할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없었다. 진주 최초의 맥도널드나 피자헛을 내는 게 장래희망 중의 하나였을 정도. 대학 동기였던 부산 출신 김 모 군은 맥도널드도 하나 없는 동네라며 진주를 비하(?)하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KFC는 미식 깡촌 진주를 밝혀주는 등불 같은 존재 중 하나였다.
최양락이 광고모델이었던 페리카나 치킨(페리카나 치킨이 찾아왔어요~ 정말 맛있는 치킨이 찾아왔어요~ 요술공주 샐리 주제가를 패러디해 만든 광고음악 기억나시는 분은 분명 나와 같은 세대) 등의 토종치킨만 알고 살았던 1995년의 내게(한국 치킨의 위상이 높아지기 시작한건 이때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KFC의 그 바삭하고 고급스러웠던 맛은 대단한 문화충격이었고 지금까지도 치킨의 최고봉은 KFC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치킨도 치킨이지만 그때 내 뇌리에 깊이 박힌 최고의 맛은 비스킷이었다. 이게 미국 남부에 정착한 영국 사람들이 현지화시킨 미국식 비스킷(소프트비스킷)이라는 건 전혀 몰랐던 시절, 왜 빵을 비스킷이라고 부르는 거지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묘한 중독성을 가진 그 맛에 빠져 KFC가면 꼭 두세 개씩 시켜서 먹곤 했다. 지금이야 한국에도 제빵, 디저트 문화가 흥하고 있어 스콘 같은 것도 흔하고 비스킷과 스콘이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음식이라는 것 정도는 구분할 정도로 미식과 관련한 잡다한 지식을 갖추고 꽤 많은 디저트들을 즐겨왔지만 나는 여전히 KFC 비스킷이 제일 좋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KFC에 들릴 때마다 비스킷에 오뚜기 딸기잼 발라 먹을 생각에 가슴이 설렐 정도다. 그래서 결론은 누가 통영에 KFC 좀(하는 김에 버거킹도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