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오후 두시 롯데월드 도착 이후 8시간 동안 대기.
놀이기구는 전혀 타지 않는 관계로 홀로 앉아 시간을 보내는게 지옥 같았다.
예가체프 첼바사를 마시고
파스퇴르 우유 아이스크림도 먹고, 15번의 낮과 15번의 밤을 모두 다 읽었지만 쉽게 지나가지 않는 시간.
거의 낙오 직전에야 폐장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인솔해 숙소로 돌아왔다.
이튿날 진로 체험활동. 학생들은 서울 각 지역으로 흩어져 체험활동.
교사들은 각자 맡은 위수지역에서 학생들의 위급 상황에 대비하며 대기.
나는 여의도 더현대 백화점에서 6시간을 홀로 버티는 임무를 맡았다.
블루보틀에서 싱글오리진 푸어오버 한잔.
중학교 1학년이었던 1992년부터 절친인 곽군이 위문하러 방문해주셨다. 그의 회사가 더현대 바로 앞.
날이 날인 관계로 인스타와 페북 피드에 탕수육 사진이 넘쳐나고 있었으나 상황이 상황이라 입맛만 다시고 있었는데 곽군이 더현대식당가의 도원이라는 곳에서 비싼 소고기탕수육과 트러플등심블랙누들을 사준 덕에 대세에 동참할 수 있었다.
더현대 지하에 파이브가이즈 2호점이 오픈했지만 웨이팅이 지옥이라 포기.
밥을 너무 잘 얻어먹어서 커피는 내가 샀다.
더현대 지하에 새로 생긴 로스터리 카페 도조커피.
어제는 예가체프 첼바사, 오늘은 예가체프 아리차.
단맛을 기가 막히게 뽑아낸 한잔이었다. 커피 세상은 넓고 고수는 넘친다.
곽군과 함께 더없이 덕스러운 기운을 풍기며 백화점 곳곳을 순찰했다.
집결 장소인 마로니에 공원에 예정보다 일찍 도착.
시간이 2000년대 초에서 멈춘듯한 대학로 풍경을 보며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꼈다.
처음 대학로를 걸었던 때가 생각났나 보다.
학림다방에서 커피나 한잔 할까 하다가 3잔은 무리일 것 같아 패스.
골목에 사람들이 몰려 있길래 뭔가 싶어 가봤더니 정돈 대학로본점 웨이팅인파. 홀린듯이 동참해서 첫타임에 먹고 나왔다.
맛집다운 탄탄한 기본기를 보여주는 곳이었으나
이 가격에 이정도 퀄리티의 돈가스는 널린 요즘이라 큰 감동은 느낄 수 없었다.
집결지에 서있던 김상옥 열사의 상.
그가 누군지 전혀 모를(가르쳤으나 기억하지 못할) 학생들에게 주절 주절 설명해주고 싶었으나
비도 오고 지각생도 많아 뭔가를 할 여건이 안됐다.
지금도 꼰대로 찍혀있는데 욕 먹을까봐 두렵기도 했고.
이후로는 사진 한컷 찍을 여유도 없을만큼 복잡한 상황이 펼쳐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3일째는 애들 모으고 출발하는 과정이 녹녹하지 않아 초반부터 탈진. 진짜 필요한 말만 하고 입을 닫았다.
한옥마을에서의 일정을 어찌 저찌 마무리 하고 통영으로 복귀. 북통영톨게이트를 보고 울뻔했다.
집에 와서 샤워하고 바로 기절.
준비과정에서 고생한 분들과 진행 과정에서 고생한 모든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모든게 급변하는 세상인데 이 근대적인 형태의 수학여행은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