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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대충 다 핀 것 같다. 다음 주면 절정에 이를 듯. 흐린 날씨에 미세먼지까지 겹쳐 아쉽긴 하지만 동네 한 바퀴만 돌아도 마음이 말랑 말랑해지는 것 같다. 매년 보는 벚꽃인데 뭐가 이리 좋을까.  

 

 

 

동네 원룸 주차장 안쪽에서 흐드러지게 폈다가 떨어진 동백의 흔적을 만났다. 목이 꺾이듯 꽃채로 떨어지는 동백의 모습이 섬찟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선연한 붉은빛도. 

 

 

 

 

점심 해 먹으려고 대파 사러 나왔다가 그냥 동네 설렁탕집에서 한그릇 사 먹고 돌아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 참 좋았다. 아삭아삭 달달한 김치와 깍두기가 쳐져있던 미각을 깨워주는 것 같았다. 아주 작은 것에서 삶을 실감하는 나날이다. 

 

 

 

이번주는 저녁 미사를 갔다. 태평성당 가는 길에 카페 영업을 마치고 로스팅에 열중하고 계신 삼문당 사장님의 모습을 보았다. 뭔가 그림 같은 상황이라 한컷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성모상 위로 달이 아름답게도 떠 있었다. 정말 오랜만의 저녁 미사였는데 토요일에 하던 학생미사를 일요일 저녁 미사로 통합했는지 아이들이 많았다. 새벽미사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어른들만 오셔서 몇 년 뒤엔 신자 수가 얼마나 줄게 될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젊은 신자들이 내 예상보다는 훨씬 많은 듯했다. 신부님도 젊은이들이 많은 저녁 미사 때는 텐션이 높아지시는 것 같았다. 성가 지도를 직접 하시는데 화통하신 모습을 보니 돈까밀로 신부가 절로 생각났다.   

 

임은 아버지 뜻 따라 구원의 잔을 높이 드셨다네.

 

거룩한 주님의 부활로 죄 많은 나를 구원하셨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당신 성혈로 잔을 이뤘네. 

 

임의 그 사랑 나도 따라서 세상의 참 사도 되리라. 

 

주님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당신 앞에 나아가리라. 

 

한말씀만 하소서 내 주여. 내 영원히 따르리라. 

 

입당송으로 부른 아버지 뜻대로(Non Mea, Sed Tua)는 칠암성당 학생회 시절부터 좋아했던 성가다.  오랜만에 부르니 숨어있던 신앙심이 절로 샘솟는 것 같았다. 새벽 미사 때는 성가 부를 일이 거의 없었는데 저녁 미사는 그 부분이 좋았다. 영성체송으로 부른 바위처럼은 좀 어색했지만. 아무래도 대학 새내기 때 운동가로 많이 불렀던 노래라 성당에서 부르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다음 주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십자가를 그으리라도 불렀으면 좋겠다. 임쓰신 가시관, 내 발을 씻기신 예수도 너무 좋은데 갈때까지 가버린 지금 목 상태으로는 절정 부분을 부르지 못할 듯

 

통영에 있는 동안 잠시 다녀야지 했던 태평성당, 2017년 2월부터 나갔으니 어느새 7년째다. 진주 칠암성당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어머니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현 교적을 유지해야지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돌아오던 길 벚꽃에 마음이 흔들려 집 앞 편의점에서 하이볼을 하나 사왔다(사실은 사사로운 덕담에서 한잔하고 들어오려 했는데 휴일인듯 영업을 안해서.). 집에서 만들어먹어도 되지만 그냥 기성품을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예상했던 대로 맛은 별로였지만. 봄밤의 마법 같은 분위기가 더해져 조니워커블루로 만든 하이볼인양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마시며 하루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