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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하면 당분간 정신없이 살아가야 할 것 같아서 방학의 마지막을 불사르기 위해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제일 큰 목적은 너무나 궁금했던 광안리 톤쇼우에서 버크셔K 특상 카츠를 먹는 것. 항상 부산 가면서 뭐 그리 대단한 계획을 세워본 적은 없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렸던 2020년 빼고는 못해도 두 달에 한 번은 놀러 가는 곳이었기에.





날이 흐려서 백화점이나 돌아다니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고 점심은 센텀신세계백화점 식당가에 있는 딤딤섬에서 해결했다. 작년 1월에 감기 심하게 걸려서 방문한 이후 처음이다. 그때는 몸 상태가 엉망이라 무슨 맛있지도 모르고 먹었는데 멀쩡한 컨디션으로 오랜만에 먹으니 샤오롱바오와 차슈덮밥이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새우돼지고기시우마이는 식감이 너무 탱글해서 내 취향은 아니었고 챠슈면도 처음 먹었을 때만큼의 감동은 없었지만 샤오롱바오와 차슈덮밥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나중에 광안리로 넘어가 괜찮은 카페에서 한잔하려고 했는데 폴바셋 아이스크림라떼는 도저히 거를 수가 없어서 결국 한잔 마셨다. 로고가 멀쩡한 잔에 받아서 사진이 잘 나왔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이우환의 친구들 기획 릴레이 전시로 열리고 있었던 무라카미좀비.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무료전시인 데다가 퀄리티가 엄청나 인파로 미어터질 정도였다. 30분 이상을 기다려 겨우 입장. 하지만 그런 수고가 아깝지 않은 전시였다. 오타쿠 감성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감동적일 전시.



음의 화신과 아의 화신이라는 이름의 조형물 뒤로 길게 늘어선 줄. 로비 한바퀴를 훌쩍 넘은 대기 인파였다.






일본의 오니보다는 한국의 도깨비 같은 이미지가 강해서 신기했다.







입구 옆면의 벽에 세계사, 일본사 연보와 함께 작가 연대기가 레터링되어 있었는데 오타쿠 감성이 철철 넘치는 내용이었다. 특히나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불량학생들과 어울리지 않고 괴짜 오타쿠 친구들과 친해진다 ㅋㅋㅋㅋ








전시장 내부에는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추천하고 싶은 전시다.



광안리에 도착해 호텔 체크인 하기 전에 바닷가를 거닐었다. 요즘은 부산오면 거의 남포동에 머물렀기에 오랜만에 본 광안리 바다가 처음 와본 곳처럼 느껴질 정도로 좋았다.



센트럴베이 호텔은 작년 1월에 왔을 때 괜찮았던 기억이 있어 예약했는데 6층으로 배정받은 게 아쉬웠다. 지난번 고층에서와 달리 전망이 너무 보잘것없어 실망.




해변까지 걸리는 것 없이 보였던 고층뷰와 달리 건물, 전선 등이 지저분하게 시야를 가려서 이정도가 방 안에서 찍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망원으로 방해물들을 최대한 피해 찍어본 해변의 모습.




멀리 아이파크와 파크하얏트가 보였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분위기가 참 다르다. 회센터같은 것들이 모여 있는 광안리 쪽이 관광지 느낌이 좀 더 강한 것 같다. 그래서 평일에도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듯.



자기만의 취향이 확고해지고 있는 진진이가 광안리에 있는 문버거라는 곳에서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해서 다녀왔다. 치즈를 녹여서 패티 위에 산더미처럼 올려주는 퍼포먼스가 아들의 마음의 사로 잡은 듯. 비주얼에 비해 맛은 소소했다.




나는 그냥 감자 튀김에 하이네켄 생맥주 한잔. 오랜만의 하이네켄 생맥이라 그런지 목 넘김이 정말 끝내줬다.








문버거 근처에 있던 민락더마켓을 한바퀴 휭 둘러보고




다시 숙소 인근으로 돌아와서 한잔 할만한 이자까야를 물색하러 돌아다녔다. 광안리 뒷골목은 작은 일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일식 혹은 일본풍의 인테리어를 한 가게들이 넘쳐났다. 사람에 따라서 왜색, 혹은 일본감성이라 할만한 것들이 충만하니 굳이 먼곳까지 가지 않고 부산에서 놀아도 되겠다 싶었다. 돈없는 역사선생의 궁색한 자기 합리화 ㅋ



숙소 바로 옆에 인스타에서 제법 핫했던 심야식당 쿠마라는 곳이 있어 그곳에서 한잔하는 걸로 결정했다. 다른 술은 없고 오직 사케만 판매하며 안주는 그날그날 바뀐다고 한다. 원래는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붐비는 곳인데 이날은 손님이 전혀 없어 아주 쾌적하게 먹고 왔다. 내부에는 다찌석 밖에 없고 좁아서 조용하게 즐기다 가야 한다고 한다. 인터넷 후기를 보니 어떤 손님은 목소리가 커서 주의를 받았다고. 사장님은 손님에 따라, 혹은 그날 컨디션에 따라 접객이 좀 달라지는 듯하다. 서비스도 많이 주시고 사케 설명도 잘해주셔서 좋았다는 후기를 봤는데 나한테는 그냥 무뚝뚝하셨다 ㅋ 앉아 있는 내내 사장님의 듬직한 등을 제일 많이 봤던 것 같다.



일식 주점이니 기본 안주를 오토시라고 불러야겠지. 딸기, 교꾸, 우엉조림, 건과일이 나왔다. 교꾸와 우엉조림이 참 좋았다. 저것만 갖고도 사케 잔술 한두 잔은 넘길 듯했다.





가난한 여행객이라 비싼 사케를 보틀로 시킬 여력은 안되니 잔술을 시켜봤다. 우미유즈와 츠루메 나츠미깡. 츠루메 유즈를 워낙 좋아해서 나츠미깡도 비슷하겠지 하고 시켰는데 내 기준에서는 너무 새콤해서 무리 ㅋ. 여름날 저녁의 더위 속에서 마시면 좀더 나으려나. 우미유즈는 유자사케하면 떠오를만한 딱 그 맛. 얼음이 녹을수록 맛이 순해져 더 좋았다.



첫 번째 안주로 시켰던 우니 - 기장산 앙장구(말똥성게), 29000원에 생각보다 양이 많이 나와서 한번 놀라고 쓴맛이 생각보다 강해서 다시 놀랐다. 다른 사람들 후기를 보니 비린맛 없이 달아서 너무 좋았다는데 비린맛은 없었지만 쓴맛은 여태껏 먹어봤던 앙장구 중에서 제일 심했다. 그래도 29000원이 아까워 간장과 고추냉이의 힘을 빌려 깨끗하게 비웠다.



이것이 고수가 굽는 야끼교자 비주얼인 것이다. 녹말물을 어찌나 예쁘게 풀어서 익혔는지. 내가 구우면 저 비주얼이 안나오던데. 일식 야끼교자하면 생각할만한 딱 그 맛, 교자 소가 엄청 꽉 차있지는 않지만 안주하긴 딱 좋았다. 사실 안주는 이거 하나로도 충분했을 정도.



스지오뎅탕이 나올 때쯤 술이 떨어져 기린잔 덴카라를 한잔 추가했다. 앞에 마신 우미유즈가 워낙 달달한 술이라 드라이한 게 마시고 싶었고 메뉴 설명을 보니 IWC2018 골드메달을 수상했다고 되어 있어서 실패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생겼다. 결과는 딱 좋았다. 카라구치다운 쌉쌀함이 입에 착 감기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스지오뎅탕. 한 접시를 따로 팔기도 했는데 양이 적을 것 같아 한 냄비를 시켰건만..... 너무 많았다 ㅋ. 스지탕은 실패할 확률이 낮은 음식이고 쌀쌀한 날 술안주로는 최고. 이 집의 스지오뎅탕도 무난하게 맛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너무 피곤해서 광안대교 보며 잠시 멍 때리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새벽에 일어나니 광안대교 한 가운데 달이 떠있었다.








잠시 햇살이 비춰서 날씨가 좋아지려나 하는 기대를 했지만 곧 구름이 몰려와 아쉽기만 했다.







플레이모빌을 모델로 사진 한장 찍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체크아웃.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톤쇼우. 10시30분부터 테이블링 오픈이라고 해서 예약 대전에 참가했지만 대기번호 220번대.... 11시 30분에 오픈하고 가서 먹을 수는 있냐고 물어보니 4시간 정도 대기 하시면 가능하다고.... 결국은 포기하고 돌아왔다. 가게 이름과 다르게 돼지는 우리에게 미소를 지어주지 않았다.


톤쇼우를 포기하고 간곳은 광안리 대표맛집 동경밥상. 사실 돈가스보다 장어덮밥이 맛도 더 좋고 영양도 풍부하고 값도 더 비싸고.....




어쨌든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킨 우나쥬 상. 이 비주얼을 보는 순간 톤쇼우가 줬던 아쉬움 따위는 곱게 접어 하늘 위로. 김엄마님의 우나쥬는 어떤 마음의 상처도 치유해 주는 맛.







이건 밥이 아니라 보약인 것이다.






후식으로 나온 푸딩도 너무 좋....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할 정도로 오너 셰프인 김엄마님에 대한 팬심이 충만한 나. 이 날은 웬일로 손님이 그렇게 많지 않아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하는 부탁을 할 수 있었다. 흔쾌히 허락해 주신 김엄마님. 팬심이 더 불타오를 수밖에.



집에 돌아오던 길에 부산현대미술관에 들러 친숙한 기이한을 관람했다. 이것 또한 무료전시. 부산 사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볼만한 기획전을 자주 해서. 전시 작품 중 최고의 인기를 자랑한 AI머리들을 보며 시간을 한참 보냈다. 현대미술에서 꽤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언캐니라는 개념을 여러 작가의 작업을 통해 보여주려는 전시였지만 솔직히 친숙함 속에서 묘하게 틀어져 있는 그 감각을 표현하기엔 좀 모자라지 않았나 싶었다. 지하의 포스트모던 어린이 전에는 오형근 작가님의 화장소녀가 걸려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역시나 압도적인 초상사진의 퀄리티. 의외의 곳에서 기대하지 않은 작품을 보니 감흥이 더 크게 다가왔다.




전시장 인근에 있는 어라우즈로스터리라는 카페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며 여행을 마무리. 나쁘지 않은 카페였지만 좋은 곳을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음료도 인테리어도, 뷰도 너무 평범하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서 닭강정에 맥주 한잔으로 여독을 풀었다. 볼파스엔젤만 히스토릭 언필터드라거는 일반 라거보다 약간 묵직한 느낌인 게 나쁘지 않았지만 구하기가 힘들어 자주 마시진 못할 듯. 역시나 제일 만만 한 건 곰표맥주. 2020년에는 품귀현상이 벌어질 정도였지만 이제는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동네맥주가 되어 버린, 하지만 그래서 너무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