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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고현주 작가의 전시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의 목소리, 작가가 소천하기 직전까지 이어갔던 작업이다. 그는 제주도 4.3이라는 주제에 천착하여 긴 시간을 사유하며 찍어왔다. 사실 고현주라는 작가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었고 이런 형식의 작업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기에 이 전시를 보러 진주까지 가게된 게 스스로도 의아했다. 배경이야기를 생략하고 사진 자체만으로는 깊이 있는 이해가 불가능한, 텍스트가 더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되는 작업들을 접할 때마다 복잡한 심정이 들어 되도록 피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전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냥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시장에 서는 순간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전해졌다. 이미지 자체가 나를 압도한 것은 분명 아니다. 사진의 형식미나 물성에서 오는 완결미는 다른 작품에서도 충분히 느껴본 것들이었으니까.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종류의 감상은 아니었다. 전시장 한 구석에 앉아 작업 영상을 보던 순간 울컥하고 넘어오는 것이 있었다. 병색이 완연한 작가가 말하는 4.3의 의미, 작업의 당위성이 괜스레 깊은 슬픔으로 다가왔다. 울림을 전해준 것이 작품인지 작가인지 모호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작가와 작품은 하나라고 보니까. 작가의 삶이, 그 태도가 작품의 비어있는 부분을 채웠다고 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니까. 고현주 작가가 쇠락해 가는 몸을 추슬러가며 끝까지 놓지 않았던, 누구에게는 당연하나 누구에게는 끝까지 닿지 않을 이야기가 그의 삶과 버무려져 새로운 4.3을 읊조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4.3을 쓰고 그리고 찍는다. 이제는 지겹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이므로 누군가는 그 당연한 이야기를 이젠 그만하라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딛고 서서 계속해나가야 한다. 고현주 작가가 생을 깎아 쓰고 찍어간 목소리가 영원히 기억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