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가지 못했던 아버지 산소에 혼자 다녀왔다. 아무도 없는 공동묘지는 무척 을씨년스러웠다. 매년 오가는 곳이지만 오늘은 유독 음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생전에 번듯한 관직에 오르지는 못하셨기에 돌아가진지 35년째인 지금도 학생이시지만 이쯤 됐으면 하늘나라에서는 한 자리 잡고 잘 지내고 계시겠지.
아버지는 생전에 담배를 참 좋아하셨다. 주로 피우셨던 건 솔. 지금은 구할 수가 없어 그나마 그 시절 담배에 가까운 88을 사 왔다. 87년, 딱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던 해에 나온 담배다.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세상을 일찍 버리신 이유가 담배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장례를 치를 때 남아 있던 아버지의 담배를 손으로 구겨서 버리던 어머니를 보며 몰래 담배 심부름을 다녔던게 너무 죄송스럽게 느껴졌다. 그때는 그게 아버지의 삶을 갉아 먹는 일인줄 몰랐으니까. 그저 담배 사오면서 먹는 월드콘 하나가 좋았을 뿐. 불을 붙이고 한 개비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 묘 앞에 앉아 이런 저런 혼잣말을 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어린 아들로 봐주실 것 같아 억지스런 바람을 들어달라고 떼도 써봤다. 내가 9살 때 돌아가셨으니 아버지와 함께한 세월은 내 전체 인생에서 얼마 되지 않는다. 아버지 없이 쌓아온 기억이 이전의 기억을 짓눌러 그 시절의 일들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그리운 마음이 드는건 왜일까. 기억의 마다 밀도가 달라 아버지와의 추억은 망각의 호수 속에서도 쉽게 떠오를 만큼 부력이 탁월해서일까? 핏줄에 대한 사람의 감정이란 어찌 이토록 묘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