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40이 넘어가면 새로운 음악을 듣는게 힘들어진다고 들었다.
예전에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
내가 그 나이를 넘어보니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새로 듣는 노래들에 감흥이 없어지는 것은 노래가 아무리 좋아도 감정 이입이 안되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 들었던 노래들에는 그것을 들을 당시의 분위기가 녹아있어
단순히 음악을 듣는게 아니라 기억이 같이 재생되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것에도 여러 의미가 숨어있겠지만
내게 그것의 본질은 노래를 듣는 것과 같다.
찍어놓은 사진 속에서 느껴지는 그날의 기억을 언젠가 다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단순한 사건의 상기 뿐만 아니라 그날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
공기의 냄새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시각적 이미지가 공감각적인 것으로 치환되는 그때마다
사진을 시작한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깨닫곤 한다.
(우습게도 이런 느낌을 동영상에서는 받지 못했다.
영상은 구체적인 기억을 되살려주긴 하지만 그날의 정서를 떠올려주지는 않더라.)
이 사진은 니콘 14-24mm F2.8 N렌즈 처음 사서 찍었던 테스트 샷이다.
남해제일고에서 진주고등학교로 전근와 고3 담임 생활이 다시 시작됐던
2010년 봄이었고 당시의 나는 야자 시간 시작 전 학교 교문 근처의 구름다리에서
급히 학교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감독하러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가운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따듯했던 그날의 대기와 쉼없이 지나가던 자동차의 소음들,
그리고 남강물에 비친 불빛의 일렁임.... 그 모든 것이 이 사진으로 인해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때의 내게 중요했던 일들, 그때의 내게 의미 있었던 사람들
지금은 모두 아무것이 아니게 되어 잊혀졌지만
이 사진 속에서는 여전히 큰 의미를 가지고 숨을 쉰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사진이
내게는 너무 소중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렇게 구구절절한 설명을 붙이지 않으면 이해받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진들은 이토록 철저하게 사적인 것이기에
그 당사자들에게는 한장도 하찮은 것 없이 소중해진다.
사진을 시작한 후 쓸데없는 이미지의 범람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고민했지만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매일 찍어가는 한장 한장의 사진이 내게 유의미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한게 아닌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