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러버의 다락방
나의 카메라 편력 - 어쩌다보니 럭셔리가 되어버린 크롭 똑딱이 GR3X 본문

GR3X(2025.03.22 - )
GR1, 2까지는 안 그랬는데 GR3은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게 비정상일 정도로 인기 대폭발이라 구하기 참 힘들고 가격이 미쳐있는 카메라가 되어버렸다. 사진 마니아들에게는 1.5크롭 센서가 들어간 스냅용 똑딱이라는 포지션으로 인해 유명했지만 그게 일반인들에게도 먹힐 줄이야. 28mm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숙련된 사진가에게는 다양한 장면을 포착해 낼 수 있는 만능의 시선을 제공해 주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광각으로 보기도 표준으로 보기도 모호하기도 해서 다루기 힘든 화각이다. 그런데 핸드폰 카메라의 표준 화각이 28mm에 가까웠기에 일반인들에게 가장 편안한 화각이 되어버렸다. GR3이 일반한테도 어필할 수 있는 카메라가 된 데는 이런 이유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앞선 버전들도 어반에디션이니 뭐니 하는 외장 배리에이션이 있었지만 28mm F2.8렌즈의 화각을 가진 똑딱이 카메라라는 정체성을 지켜왔는데 GR3에 와서는 GR3X라는 35mm 풀프레임 환산 40mm의 화각을 가진 새 기종이 추가되었다. HDF 같은 기능 추가 버전도 등장했고. 그만큼 인기가 있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GR3을 넘어 스펙상으로는 크게 바뀐 게 없는 GR4가 발매됐는데도 손에 넣기 어려운 건 여전하다. 내 기억에 GR시리즈는 발매가 100만 원 언저리, 중고가는 30-50만원 사이를 오가는 부담이 크지 않은 카메라였는데 몇년간의 GR3 신품 및 중고가, GR4의 발매 가격을 보니 그런 기억이 참으로 무색해져 버렸다. 솔직히 그 돈이면 A7C와 FE35mm F1.8을 중고로 사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 카메라는 큰 센서를(그래봤자 1.5크롭이지만) 콤팩트카메라라고 불리는 콘셉트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몇 안 되는 제품이라 대체가 불가능하다. 이 콘셉트에 맞는 건 후속기가 나오지 않고 있는 니콘 쿨픽스A 그리고 후지 X70 정도밖에 없다. 누군가는 소니 RX1시리즈를 말하기도 하지만 크기 자체가 다르다. RX1의 경우 겨울 점퍼라면 모르겠지만 바지 주머니에는 절대 넣을 수 없다. 혹여 넣을 수 있다고 쳐도 그 고가의 카메라를 아무렇지 않게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 카메라를 휴대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크던 작던 가방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GR시리즈는 바지 주머니에 들어간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많이 많이 크다. 초기 전원 기동 속도도 GR 쪽이 우수하다. 완벽한 스냅 콘셉트의 카메라인 것이다. 작은 카메라 특유의 느낌과 장점이 있어 사진 찍는 감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도 장점이다. 우수한 간이 접사 기능 역시 때때로 매우 유용하다. 결국 GR시리즈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새 버전의 GR뿐이다. 그래서 가격이 이리 미쳐 돌아가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스트릿포토, 즉 거리 스냅을 벗어난다면 그 장점은 상당히 희석된다. 이 카메라의 색감이나 다른 부가 기능들은 다른 고급 카메라를 대체해 모든 작업을 커버해 내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전문사진가에게는 좋은 장난감, 취미용, 서브의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메인 카메라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GR3이 아니라 GR3X를 쓰는 이유는 내게 더 잘맞는 화각이 40mm대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타이트한 화면 구성을 할 수 있다는 것(나는 광각보다 표준, 망원 영역이 더 편안하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28mm 영역까지 다가가는 게 힘들어서 일지도.)은 내게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GR4가 나왔지만 기변 욕구가 들끓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사실 GR4와 3 사이에 괄목할만한 변화가 없기도 하다). GR1과 2를 사용해봤기에 지난 3월에 GR3X를 들이면서 큰 감흥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화각의 변화는 완전히 다른 카메라라는 느낌으로 다가왔고 아주 만족스럽게 사용했다. 수업을 오갈 때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별것 아닌 풍경, 소품들을 찍고 다녔다. 중형이나 풀프레임으로 각 잡고 찍기는 부담스러웠던 소소한 사물들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게 무엇보다 좋았다. 소니, 캐논, 니콘의 작지 않은 DSLR, 미러리스만 경험해본 사진가들에게는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카메라다. 딱 일주일만 사용해보면 사진 찍는 감각이 완전히 달라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경험의 확장이라는 부분에서 그들에겐 오히려 핸드폰 보다 큰 카메라를 들고 새로운 감각을 느껴보는 것을 더 권장하고 싶다.
고화소풀프레임성애자라 GR3X의 2400만 화소 크롭센서가 아쉬울 때가 있다. 만약 GR시리즈가 고화소의 풀프레임센서를 탑재하고 출시된다면 너무 좋아서 울어버릴 것 같다. 제일 기대하고 있는 카메라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중형센서 탑재된 디지털 롤라이플렉스. 둘다 출시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