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윤이상 국제 음악당까지 왕복 4.2km의 거리를 걸어가 스쿨콘서트라는 걸 관람하고 왔다. 정말 오랜만에 학년 전체를 인솔해 나간 야외활동.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13세와 15세의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대단한 협연을 보여주었다. 저 어린 나이에 어떤 세월, 어떤 수련 과정을 겪었길래 저런 연주가 가능한 것인지. 저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하는 자괴감이 느껴지던 순간 옆에 앉아 있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학교 학생들을 보니 위안이(?) 됐다. 보통 사람에게는 보통 사람의 길이 있는 것이지. 1시간의 짧은 공연이었지만 오케스트라에 대한 여운을 안겨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행사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니 점심시간, 자리에 앉으니 무릎이 시큰거렸다. 매일 같이 만보이상은 걷고 있어 별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짧은 시간 안에 만사천보를 걸었더니 관절에 무리가 왔나 보다. 이뤄놓은 것은 없이 몸만 늙어가는 슬픈 인생이다.
오랜만에 이런 공연을 보고 오니 노다메 칸타빌레를 정주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7년 남해제일고에 근무하던 시절에 애니메이션으로 접했던 노다메 칸타빌레는 여러모로 대단한 만화였다. 그림체는 도무지 내 취향이 아니었는데 내용이 너무 재밌어 끝까지 보고 말았던. 당시 맡았던 고3여고생 반에 말 안 듣는 애들이 몇 있어 너무 힘들었는데(정말 진짜 미웠다. 여고생이랑은 절대 안 맞아떨어지는 이놈의 성향은 예나 지금이나 정말 한결 같다.) 노다메칸타빌레의 무근본 개그를 보며 마음이 평화로워져 폭주는 하지 않은 채로 학년을 마칠 수 있었다. 내가 처해있는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재능이 넘쳐나는 음대 학생들의 이야기가 천재들의 삶을 동경하던 내게는 너무 부럽고 즐거워 보였다. 실제 음대생들이 그 만화의 주인공처럼 살지는 않겠지만. 내 재능은 음악과 관련된 쪽으로는 전혀 발현되지 않았으나 그림을 그린다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만으로도 예술에 한발 정도는 담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묘한 동질감을 느꼈었다. 그때는 20대였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닭살 돋는 그런 여러운 감정이 힘이 되어주었더랬다. 아직도 그때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50을 바라보는 아재가 되어버렸지만, 이제는 애니메이션 보며 감정이입하고 힘을 얻을 정도로 순진하지도 않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영원히 꿈을 좇는 노다메와 치아키 센빠이를 보며 내게도 요원하지만 완성하고 싶은 어떤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시간쯤은 가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