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절정으로 치달았던 더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낮의 무더위는 쉽사리 긴팔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사람을 은근히 지치게 만드는 이런 날씨가 복중 폭염보다 더 힘들게 느껴진다. 세상이 모호해져만 가니 기후도 현대미술을 닮아가는 것인지. 계절이라도 고전주의처럼 스트레이트로 때려주면 좋겠다. 4계절이 뚜렷했던 예전의 우리나라가 너무 그립다.
기운도 없고 뭘 먹어야할지 감도 안 오고 해서 집 근처 국밥집에 들렀다. 통영에 온 이후 근 10년 동안 그곳에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지만, 맛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던 곳이다. 돼지국밥을 그다지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옥동식이나 엄용백처럼 잡내 같은 것이 전혀 없어 깔끔한 느낌으로 먹고 나올 수 있는 곳은 몰라도 로컬의 느낌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거친 느낌의 가게들은 웬만하면 피해왔다. 이 집도 딱 전형적인 돼지국밥집의 느낌을 주는 곳이기에 애써 들리지 않았었는데 이날은 모든 게 귀찮았고 내가 서있던 곳 근처에 부담스럽지 않았던 곳이 여기밖에 없었다. 대충 자리 잡고 앉아서 모둠국밥을 하나 시켜 먹었는데 첫 한 숟갈이 너무 뜨거웠다. 아.... 그랬지 이게 내가 싫어하는 느낌이었지. 토렴이 되지 않은 미치도록 뜨거운 국물(이집은 기본이 국 따로 밥 따로). 역시 그런가 하는 기분으로 잠시 쉬었다 다시 숟가락을 들었는데 약간 식고 나니 의외의 맛이 느껴졌다. 내가 싫어하는 미세한 돼지 잡내는 전혀 없었고 부담 없이 술술 넘어가는 깔끔한 진국이었다. 잘잘하게 잘려 있지만 고기 양도 풍성했고. 찬으로 나온 깍두기와 김치도 양념이 부담스럽게 묻어 있어 간이 강한 편이었지만 국밥과 먹기에는 딱 좋았다. 밥까지 말아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느새 완뚝. 솔직히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울만한 통영의 맛집이다라고 까지 말할 건 아니지만 기운 없을 때 한 그릇 먹으면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나올 수 있을만한 곳이었다(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통영 최고의 돼지국밥집이라고 하는 복돼지국밥보다 나은 듯.). 이런 곳을 10년 넘게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니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