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엔진오일을 교체하라는 안내문구가 떴다. 요즘 차들은 엔진오일, 타이어 공기압 등을 자동 체크하는 기능이 있어 차를 몇Km 운행했는지 계산해가며 차계부를 쓰던 건 정말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때가 되면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주는 인디케이터들은 차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여러 곳에 침투해있다. 스마트폰이나 워치가 갖고 있는 여러 기능들 덕분에 언제 약을 먹어야 하는지, 언제 운동을 해야하는지 등등을 깨닫곤한다. 기술이 좀 더 발전하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언제 뭘 먹고, 어떤 걸 멀리해야하는지도 지시해주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 목표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언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야하는지를 가이드해주는 기기가 등장할지도.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헤매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방향성의 제시일테니까. 큰 도움도 되지 않는 자기계발서를 읽어가는 것도 다 그런 이유 아니겠는가? 확고한 자기 주관을 갖고 미래를 헤쳐나가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불안감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모두 삶의 인디케이터를 갖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가끔 이런 소재를 다루는 영화나 만화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인디케이터에 의해 사람의 자유의지가 침해당하고 결말 부분에는 그것의 지배로 부터 벗어나 다시 자유의지를 찾는 것으로 끝나곤 한다. 하지만 그 자유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인디케이터로부터 벗어난 인간들은 다시 행복을 찾았을까? 시간이 흐른 후 그와는 다른 방식의 인디케이터를 찾아 헤매고 있는건 아니었을까? 학생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되어야할 직업인 교사, 그 중 한명인 나조차도 사실 삶의 방향성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채 좌충우돌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래서 가끔 내가 다다르고 싶은 삶의 종착역에 이르는 길을 알려줄 존재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진정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지금 우리는 어떤 것을 지표로 삼으로 삶의 안개 속으로 걸어가야할까? 그것이 인공지능이라면 잘못된 것일까? 획일화된 삶을 살지말고 너만의 무언가를 찾으라고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이미 거의 똑같다고 봐도 무방할만한 삶의 양식에 따라 살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