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장마가 주는 눅눅함에 지쳐 있다가 해가 나니 마음까지 뽀송뽀송해지는 기분이었던 어제.
며칠전에 예약했던 오월에 다녀왔다.
예약제 원테이블 레스토랑(실제로는 테이블 두개임)인데다 파리의 요리, 제빵 전문학교인 르꼬르동 블루를
수석 졸업했던 한국인 셰프가 통영에 내려와 운영하는 곳이라는 소문을 듣고 궁금증이 동해서 안가볼 수가 없었다.
오월은 많은 사람들이 루지와 케이블카를 타러오는 도남동 한 골목에 가정집에 자리잡고 있다.
간판이나 위치 안내 표지가 없어 헤맬 수 있는데
분홍바탕에 갈매기가 그려진 물탱크가 있는 집을 찾아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식당 내부는 그냥 가정집.
방 하나에 테이블이 두개 있는데 두 팀을 동시에 받지는 않는 것 같았다.
(우리 예약이 다섯시고 다음팀이 6시에 온다 들었다.)
집에서 쓰던 자개장에 아무렇지도 않게 꽂아놓은 책들과 소품들.
발렌타인 30년산이 특히 눈에 밟혔다 ㅋ
소소한 소품들이 편안한 아름다움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사실 이 집은 분위기보다는 맛이 궁금해서 왔다. 최고의 요리라고 불리는 르코르동 블루 출신의 요리는 어떤 것일까?
통영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큰 즐거움이다.
1인 3만원-7만원까지의 코스가 있고 원하는 식재료가 있으면 최대한 맞춰준다고 하는데
우리는 사전정보가 많지 않아 4만원짜리 코스를 예약했고 모든 것은 셰프님께 맡겼다.
전체요리로 나온 소라 아보카도 명란 샤워크림, 전어.
소라는 너무 싫어하는지라 맛을 평가하기 힘들다.
(지난 번 야소주반에서도 그렇고 통영식 코스 구성에는 꼭 소라가 들어가던데
다른 분들은 다들 좋아하시나보다.)
전어는 와사비에 버무려 나왔는데 그냥 전어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먹은 아보카도 명란 샤워크림은 와사비로 고전하던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주더라.
자몽, 구스베리, 리코타치즈 샐러드
씁쓸한 느낌이 강했다. 식욕을 돋우기 위해서 이렇게 쓴맛을 견뎌야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깨끗히 비웠다. 구스베리를 처음봤는데 대단히 신기한 느낌이었다.
위쳐3 등장인물인 예니퍼에게서 라일락과 구스베리 향이 난다는 묘사가 있어 궁금했는데
소스에 버무려져 있는 상태라 구스베리 향이 어떤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치 오일파스타.
알덴테 식감을 즐기지 않는 내게는 그리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미식가들이 평하는 기준에서는
가장 적절한 면익힘 정도였을 듯 하다. 한치와 조개를 즐기지 않지만 맛있게 먹었다.
다른 집에서 먹는 오일파스타에 비해 묽은 느낌이 강했고 매콤한 편이었다.
한우 안심스테이크와 무화과절임.
고기가 너무 부드러웠고 익힘 정도가 완벽했다(레어에 가깝다.).
무화과 절임도 평소 경험해보지 못한 독특한 맛이라 좋았다.
4만원 코스에 이런 스테이크라니 싼 가격에 대단한 경험을 했다 싶다.
후식으로 나온 민트티와 파이.
민트향이 정말 강했고 파이는 복합적인 맛이라 재료가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무리 음식으로 딱 적당한듯 싶었다.
실력있는 셰프의 가정식 요리를 4만원 정도의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험해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다만 내 기준에서는 모든 요리의 간이 많이 심심한 편이라 먹는 내내 소금이 생각났다.
(이 저렴한 미각을 어찌할 것인가?)
일반적인 캐주얼 레스토랑이 길들여진 입맛이라면 맛이 좀 의아할 수도 있으니 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