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기상. 서울 아산병원에서 수술전 검진을 받아야하는 아들을 태우고 서울로 향했다. 예전에는 밤을 새고 뭔가를 해도 몸이 힘든지 몰랐는데 어제 9시부터 잤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들지 않아 고생했다. 다행스레 통영은 비가 오지 않아 운전이 어려울 것 같진 않았지만 차안에 걸려있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무사 귀환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쉴새없이 달려 5시 50분에 도착한 신탄진 휴게소. 잠이 너무와서 빠삐코를 하나 사 먹으며 정신을 추스렸다. 피곤한 몸에 차가운 당분이 흘러들어가니 각성효과가 확실한 것 같았다. 대학교 3학년 때 술병이 제대로 걸렸다가 투게더 한통을 먹고 나서 가뿐해졌던 이후 술만 마시면 투게더를 찾는 버릇이 생겼는데 앞으로는 새벽 운전을 할때마다 빠삐코를 찾게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경기도 인근으로 들어오자 폭우가 쏟아져 운전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래도 어찌 저찌 해서 겨우 도착해 아산병원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조금만 늦으면 주차할 곳도 없는 곳이라 이렇게 새벽에 오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했다.
접수를 하고 수술을 위한 여러 검사를 받았다. 아침에 고생해서 올라간 보람도 별로 없이 검사 자체는 한시간 정도로 끝났다. 이 짧은 이벤트를 위해 왕복 9시간 운전을 했다는게 허탈하긴 하지만 어찌하랴. 아들의 삶이 걸린 문제인데. 이런 의료 서비스 등을 쉽게 받기 위해 그렇게도 서울을 고집하나 보다. 서울 사람들이 아둥바둥하며 부동산에 목을 메는 이유를 1g 정도는 이해할 것 같았다.
내려가기 전에 점심을 먹어야할 것 같아서 신관 1층에 있는 중식당에 들렀다. 볶음밥도 삼선짜장도 맛은 고만고만. 병원 안에 있는 식당이라서 병원밥이라는 느낌이 드는건지 입에 달라붙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허기를 면할 정도로 깨작거리다가 다시 통영으로 출발.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시피 나는 운전을 정말 싫어한다. 한시간 이상 운전대를 잡으면 무조건 졸음과의 사투를 벌여야하고. 그런 내가 왕복 9시간의 운전을 이렇게 자주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인생이란 예측불허 그러기에 생은 의미를 가진다는 명대사를 탄생시킨 아르미안의 네딸들을 좋아하던 덕후 소년이 이제야 그 만화 대사의 진정한 뜻을 되새기며 슬픔 속에도 빛이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