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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ary thought

니힐리즘을 넘어서

coinlover 2008. 12. 30. 19:44

나는 아직 타이타닉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

98년 그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우리나라는 IMF라는 어둡고 긴 터널의 입구에

막 들어섰을 뿐이고 언론에서는 타이타닉으로 인한 외화낭비를 막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내가 타이타닉을 보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물론 몇년이 지난 지금 OCN등의 채널에서 지겹도록 해주고 있긴 하지만

그 때의 그 씁쓸한 기분에 아직도 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 그때 나는 언론 플레이에 놀아나는 어리석은 새내기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렇게 어리석은 내가 지금은 역사를 공부하며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것이 가끔은 너무 부끄러워 몸이 떨릴 때가 있다.

진중한 자세로 역사를 마주하고 앉은지 사실 몇년 되지 않지만

역사를 공부하면서 느끼는 허무함과 절망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요즘처럼 현대사를 공부하고 있자면 그 답답함은 극에 달하고 만다.

과연 이 나라에 정의가 바로 선 때가 있었는가?

언제쯤 우리는 이 모든 모순을 딛고 서서 참세상을 외칠 수 있을 것인가?

모든 것이 요원하기만 하다.


사는게 다 그런거지 뭐.


라는 말이 입에 붙어버린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거다.

그 말은 내 역사적 허무주의의 발로였을지도 모른다.

올바른 역사관과 정의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자면

여러 현실이 가슴을 아프도록 옥죄어 온다.

내 힘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일개 역사 학도에 불과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끝도 없이 반복되는 질문과 답없는 현실에서

견딜 수 있는 방법은 망각과 도피 뿐이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른 채 강자의 편에 선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일일거라 생각도 했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집중해서 듣고 있는 몇몇 학생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나마 비판의 글만이라도 망설임 없이 쓸 수 있는 지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버렸던 선배들을 생각해서라도 지금과 같은 나약한 마음을 버릴 수 밖에 없다. 

정치에 실망한 나머지 모든 관심을 끊어버리는 행위, 

현실로부터 눈을 돌려 안위를 구하는 허무주의는 

어쩜 반역사 세력, 반민주 세력, 반민족 세력이 가장 바라고 있는 바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이순간 마음을 고쳐 먹는다. 

우리에겐 기억해야할 역사가 있다. 

기억하는 것은 과거에 빚지고 있는 우리가 가져야할 최소한의 예의이며 

그것을 전하는 것은 역사에 투신한 나의 의무이다. 

나는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자로서의 자각을 다시 한번 뇌리에 아로 새긴다. 

허무주의를 넘어서 참세상의 역사를 밝힐 사람들을 위해.